프리다 칼로의 1936년 작 '우주와 대지와 나와 디에고와 세뇨르 홀로틀의 사랑의 포옹'. 멕시코 전통 신화를 끌어들여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림에서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프리다 자신이고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가 남편인 디에고다.

- 프리다는 아기 디에고를 안고
- 대지의 여신은 프리다를 안고
- 우주의 신은 대지를 품에 안고…

- 바람둥이 남편으로 인한 분노
- 깊은 고독·절망 속에서 찾아낸
- 자아와 새로운 사랑의 깨달음
- 넉넉한 모성으로 모두 껴안아
그녀의 일생이 응축된 자화상

프리다 칼로(1907-1954)가 그 사고를 당한 것은 18세 때였다. 칼로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였던 것이다. 끔찍한 사고는 꿈 많은 한 멕시코 소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척추는 으스러졌고 골반은 세 조각이 나버렸다. 생의 많은 시간을 누워서 지내야 했으며, 출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고 이후, 오랫 동안 침대에 누워있게 된 프리다 칼로는 좌절감을 이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게 된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 대부분은 자화상이다.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외출'을 나서기까지 55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말했다. "내가 나를 그리는 이유는 너무 자주 외롭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이 말은 반만 맞다. 사실 자화상은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미지의 영역이다. 가장 깊은 심연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프리다 칼로의 그 두렵고 외로운 탐색은 '우주와 대지와 나와 디에고와 세뇨르 홀로틀의 사랑의 포옹'(1949)이라는 긴 제목의 작품에서야 사실상 종착점에 이르게 된다.

마치 심포니의 4악장 종결부에서 전 악장 전 악기가 한꺼번에 울리는 진동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한 외로운 예술혼의 전 생애가 하나의 그림 속에 울릴 때, 그것은 장엄하다. '우주와 대지와 나와 디에고와 세뇨르 홀로틀의 사랑의 포옹', 이 우주적인 숭고함과 심오한 비애와 초현실적인 신비로움에 싸인 이미지의 수심으로 자맥질해 들어가 보자.

■디에고 리베라를 아기로 그려

	프리다 칼로 작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는 아기가 된 디에고를 안고, 대지의 여신은 프리다를 안고, 우주의 신은 대지를 안고 있다. 얼굴을 드러내는 존재는 모두 무표정하다. 수많은 표정을 감춘 가면처럼. 무표정은 왠지 쓸쓸하다. 이 우주적인 무표정의 쓸쓸함과 세계를 껴안는 따뜻한 손들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균열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가?

프리다는 일생에 두 번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고 술회하곤 했다. 한 번은 18세 때 교통사고, 한번은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이다. 교통사고는 그녀의 몸을 파괴했지만, 디에고와의 결혼은 마음을 산산조각 냈다.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일생의 사랑이었지만, 그의 여성편력은 프리다에게 끝없는 절망이었다.

그 움켜쥐어지지 않는 사내를 프리다 칼로는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아기로 그렸다. 디에고를 안고 있는 프리다의 포옹에는 사랑과 증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그녀의 일생이 응축되어 있다.

프리다를 안아주고 있는 여신은 모국 멕시코의 대지이며, 또한 여신 가이아이다. 그녀는 멕시코의 메마른 땅에 선인장을 키워내면서 가슴에는 하늘과 땅을 잇는 세계수(世界樹, 혹은 우주목)를 솟게 한다. 대지는 근원적인 모성이다. 대지의 포옹은 아이를 출산할 수 없었던 프리다 칼로도 어머니로 만든다. 대지, 특히 고향의 땅은 어머니의 몸이다. 김선우의 시 '어라연'처럼.



어라연 계곡 깊은 곳에

어머니 몸 씻는 소리 들리네



―자꾸 몸에 물이 들어야

숭스럽게스리 스무살모냥……

젖무덤에서 단풍잎을 흩어내시네

그 어머니의 몸을 다시 양성적(兩性的)인 우주의 신이 안고 있다. 우주의 신은 해이면서 달이고, 남성이면서 여성이고, 삶이면서 죽음이다. 프리다의 치마 끝에는 죽은 자들의 영토를 지키는 개, 홀로틀(프리다가 기르던 개이기도 하다)이 생명의 포옹 안에 잠들어 있지 않은가. 이는 대립과 모순의 양립을 허용했던 아스텍 신화의 모티프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어김없는 태극의 도상이 아닌가. 보라, 태극은 무수한 생명의 뿌리를 드리운 생명의 포옹이다.

디에고의 그림 '알라메다 공원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 속에서 프리다는 기이하게도 왼손에 태극 장식을 들고 있다. 이는 그녀가 동아시아 음양론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말해준다.

대지의 여신의 목 부근에서 가슴으로 땅이 찢어져 있다. 그 깊은 상처 끝의 젖가슴에서 젖이 흘러나온다. 신화에서 말하는 땅의 젖, 지유(地乳)이다. 그런데 프리다의 목 부근에도 동일한 형태의 상처가 나 있지 않은가. 거기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일생 동안 가졌던 고통의 액체이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열정의 액체이다.

■붉은색 드레스가 더욱 강렬하게

	디에고 리베라 작 '알라메다 공원의 어느일요일 오후의 꿈' 부분도

그녀의 붉은색 드레스는 이 피에 젖으면서 더욱 강렬한 색채가 된다. 사람의 피를 통해 우주와 시간이 지속된다는 아스텍 신화와 인신공양의 전통을 그녀는 보여주려는 것일까? 피는 흘러내려 그녀 가슴에서, 대지 여신의 지유처럼 젖의 분수를 이룬다. 대지의 여신과 프리다 칼로는 동형이다. 프리다의 가슴은 젖과 꿀이 아니라 젖과 피가 흐르는 가나안이다. 그런데 이 젖의 분수는 디에고가 손에 든 불꽃과 정확히 상하로 상응한다. 불과 물의 만남, 그것은 다시 태극이면서 또한 연금술적이다. 대립, 그리고 그 대립의 일치!

디에고는 이마에 제3의 눈을 가졌다. 아마 그것은 깨달음, 지혜의 눈이리라. 동아시아의 연금술인 내단(內丹)에서 명상을 통해 체내 음기와 양기를 결합하는 수련이 극치에 이를 때 수행자의 몸에 태아가 잉태된다. 그 태아는 깨달음에 이르는 새로운 자아다. 그것을 성태(聖胎)라 한다. 이 그림에서 프리다의 품에 안긴 디에고는 프리다의 성태일지 모른다.

그녀 인생의 온갖 환희와 비애, 사랑과 절망적 증오의 대립이 그 심연의 극한에서 이룬 화해의 깨달음, 그 새로운 자아의 태아가 아닐까? 칼 융은 무의식으로의 여행, 그 심연에서 만나게 되는 태아(신적인 아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머니를 넘어서, 말하자면 출생 이전의 '영원히-여성적인 것', 즉 원형적 가능성들의 근원적 세계로 되돌아가게 된다. 거기에서 […] '신적인 아이'는 자신의 의식화를 기다리며 잠자고 있다. 이 아들은 전체성의 배아이다.(칼 융, '영웅과 어머니 원형')



프리다는 지금 '영원히-여성적인 것' 그 근원에 닿아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위대한 모성이 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자신, 신적인 아이를 잉태하고, 또 그 아이로 잉태되고 있다.

이 그림의 공간은 우주적인 신화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프리다 칼로 자신의 심층 내면 공간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우주와 대지와 디에고, 그리고 홀로틀은 모두 프리다의 생을 이루는 얼굴이고 표정이다. 그리고 화해할 수 없었던 사랑과 증오의 대립을 포옹함으로써 얻게 된 새로운 사랑의 깨달음, 새로운 자아이다.

아마 이 긴 제목의 기이한 그림은 그녀가 그린 것 가운데 가장 심오하고 가장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자화상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의 고통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