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선 1960년대 숨은 한국영화 걸작을 소개하는 회고전을 마련해 주목된다. 이 가을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되새겨볼 만한 작품들이 많아 중장년층 관객들의 호응이 예상되며, 젊은층에게는 색다른 감동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사를 뒤져보면 미처 몰랐던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에 선보일 보석같은 1960년대 한국영화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비무장지대

비무장지대는 연극배우 박정자 씨의 오빠인 박상호 감독이 1965년 만들었다. 이 영화는 비무장지대에서 엄마를 찾아 헤매는 소녀와 소년을 그린 이 영화는 분단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를, 어린이의 눈으로 보여준다. 아이들은 땅에 선을 그어 이쪽은 내 땅, 저쪽은 네 땅이라 구분 짓고 먼저 말을 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을 한다. 소년이 게임이 집중하느라 말을 하지 않자 소녀는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 소년이 이기고 소녀가 진 것일까? 대치 중인 남과 북의 태도를 그린 이 장면은 한국영화사상 분단에 관한 가장 뛰어난 묘사로 평가된다. 

■명동에 밤에 오면

이형표 감독의 '명동에 밤이 오면'의 원작영화는 일본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다. 이 영화는 굴곡진 사연을 가진 화류계 여자의 삶을 그렸다. 최은희가 연기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원작의 여배우 다카미네 히데코와 다른 개성을 발휘했다. 이형표 감독의 연출도 탁월했다. 비슷한 유형의 영화는 '육체의 고백'과 '육체의 문'을 들 수 있다.  조긍하 감독의 '육체의 고백'은 미군을 상대하는 클럽의 여주인이 주인공이다. '육체의 문'은 터키탕에서 일해서 돈을 모은 여자가 주인공이다. 모두 배신당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자기 삶을 살아나가는 여성을 가슴 아프게 그리고 있다. 

■살인마

동서양의 여러 괴담이 뒤섞인 '살인마'는 한국 공포영화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원혼이 고양이에 깃든다든가, 귀신은 사람 눈엔 보이지만 거울엔 비춰지지 않는다든가, 사람 목을 물어 흡혈을 한다든가 하는 공포영화의 원형에 해당하는 묘사와 함께 억압된 가족의 성욕이 기괴한 형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현금은 내 것이다

한국 갱스터영화의 기원을 짐작하게 하는 '현금은 내 것이다'는 중절모를 쓰고 양복을 입은 갱들이 카빈총을 쏘는 갱스터물이다. 미국영화나 프랑스영화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설정이지만 범죄자의 자수를 그린 결말은 매우 한국적이다. 

■장군의 수염과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은 1960년대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이다. 이어령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신동헌 화백이 그린 애니메이션이 들어있는데 이 애니메이션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훌륭하다.  최하원 감독의 데뷔작인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황순원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두 영화는 사제지간이라 할 수 있는 감독들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특히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그동안 필름을 찾지 못해 볼 수 없던 작품이다. 당대 놀라운 데뷔작이라는 평을 들은 바 있다. 현재는 '꽃보다 할배'로 유명한 배우 이순재 씨의 젊은 시절의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 

■만선

올해 필름을 새로 발견한 김수용 감독의 만선을 만날 수 있다. 김수용 감독은 '갯마을' '안개'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 숱한 걸작을 만들었지만 이번에 발견된 '만선'은 단연코 1960년대 한국 리얼리즘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힐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