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2인조 하드록 밴드 B9(비나인). 기타 없이 베이스와 드럼으로 구성됐는데도 깊은 울림을 준다.

상냥하지만 상냥하지 않은 여성 2인조 하드록 밴드 B9(비나인).

1990년대에 활동했던 밴드 '와일드 로즈'와 '헤디 마마' 이후 부산 출신 여성 록밴드의 명맥이 한동안 끊어진 듯했는데, 최근 여성 멤버로만 이루어진 새로운 록 밴드가 부산 로컬 인디 신에 등장했다.

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악기인 기타 없이, 베이스와 보컬을 맡은 박주영, 드럼과 코러스를 맡은 정소라. 두 명의 20대 여성으로만 구성된 하드록 밴드 B9이다. 현재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여성 록 밴드다. 팀 명 B9(비나인)은 '상냥한'이라는 뜻의 'benign'에서 따온 것으로 상냥하면서 또 상냥하지 않은 음악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탄탄하고 육중한 베이스와 드럼, 보통의 록 밴드에선 리듬파트 정도로만 여겨졌던 악기로 무대 위에 서서 짙은 아이라인과 까만 선글라스로 눈빛을 감추고 빈틈없이 강렬한 로큰롤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두 여성의 모습이 마치 이베리아 반도에서 탱고를 추는 여느 여인처럼 어딘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때 상큼 발랄 샤방가르드한 음악을 선보이던 어쿠스틱 밴드 '달콤씁쓸한'으로 곱고 맑은 노래들을 살랑살랑 수줍게 들려주던 그 처자들이다.

뭐랄까. 학창시절 버스에서 매일 우연히 마주치는 가을 코스모스를 닮은 이름 모를 어느 소녀에게 드디어 용기 내어 몰래 뒤쫓아가 고백했는데, 알고 보니 칠공주파에 속해 있는 일진이라 도리도리 소리 나게 얻어맞고 참고서 살 돈까지 몽땅 털려버린 것 같은 당혹감이 든다. 하지만 어쩐지 싫지는 않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어 다시 두근거리는 그런 부끄럽고 혼란스러운 기분이다.

■ 원초적·간결한 사운드 추구

'달콤씁쓸한'으로 앨범 발매도 하고 한창 활동하던 중 예전부터 좋아했던 강한 드럼이 들어간 밴드 음악을 시도해보고 싶어 각자 기타 드럼 베이스를 맡아 합주하다 베이스를 맡았던 멤버 최수지가 개인 사정상 탈퇴하는 바람에 '달콤씁쓸한'을 정리하고 2인조로 비나인을 결성했다.

처음엔 박주영이 기타를 담당하며 새로 베이스를 영입하려던 계획이었으나, 어느 날 우연히 베이스와 드럼으로 구성된 영국의 2인조 하드록 밴드 '로얄블러드'를 접하고 영감을 받아 기타 없는 2인조 하드록 밴드로 노선을 정했다.

록 밴드의 주 무기인 기타는 없지만, 베이스의 유려하고 탄탄한 저음은 듣는 사람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준다. 화려한 장식이 모두 빠지고 핵심만 남은 원초적이고 미니멀한 사운드로 여느 밴드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하드록을 선보이고 있다. 기타의 높은 음역대를 베이스로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이펙터를 사용해 베이스 사운드를 변형하고 있다. 최근 관찰하니 해외의 2인조 밴드들은 앰프를 두세 개씩 사용하기도 해서 그 방법도 연구 중이다. 개성 있고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실험이 재미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펙터나 앰프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단점이라고 한다.

■ 19일 도시철도 장전역 야외무대

결성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밴드라 거의 매일 부산대 인근 인디레이블 루츠 레코드 연습실에서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일단은 밴드 활동이 1순위라 연습에 지장을 받지 않는 오전 시간대에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부산대와 경성대 앞에 있는 소규모 라이브 클럽과 펍에서 주로 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난 여름엔 부산록페스티벌 프린지 무대에 초청받았다. 오는 19일엔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문화축제인 제로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도시철도 장전역 아래 야외무대에서 사이드카, 언체인드, 하퍼스와 함께 공연할 예정이고, 다음 달 10일 부산클럽투어 10주년 기념 무대에 설 계획이다. 오는 11월 6일엔 부산대 앞 베이스먼트라는 펍에서 필리핀에서 온 밴드 +2db와 함께 공연이 잡혀있다. 흔히 여성이 잘 시도하지 않는 음악이기도 하고, 드럼과 베이스만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구성 탓 음악 관계자나 동료 뮤지션들이 특히 더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한다.

■ "라이브 클럽 전성기 꿈만 같아"

공연 때마다 선보이는 'what are you afraid of'라는 자작곡은 항상 이 길이 맞는지, 잘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자신에게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한 곡이다. 올 연말에는 첫 번째 음원을 발표할 계획이다. 꾸미지 않은 가장 솔직한 언어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싶다고 한다.

선배들의 얘길 들으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엔 공연도 하고 연습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는 부산대 앞에도 정말 많은 라이브 클럽이 있었고, 공연할 때마다 관객으로 북적였다고 하는데,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정말 꿈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대학가는 상당히 한적하고 조용한 느낌이다. 다들 각박한 삶에 치여 여유를 찾기 어려운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주말엔 친구랑 함께 영화 보러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닮고 싶은 뮤지션이 있느냐고 묻자, 부산에서 오랫동안 지역을 지키며 활동하고 있는 밴드 스카 웨이커스와 언체인드를 존경한다고 한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며 음악으로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솔직하게 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계속 이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고 한다. 훗날 우리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공감을 주는 밴드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거기다가 개인적인 바람을 하나 살짝 추가해 본다면 거친 사내들로 가득한 록 신에 앞으로 B9 같은 멋진 여성 록 밴드가 더 많이 등장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신생 록 밴드 B9이 수많은 소녀의 워너비가 될 수 있도록, 지금도 충분히 멋있지만 더욱더 멋있어지길 기대한다.

작가·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