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이민자'는 그의 전작들이 미국의 동시대 사건에 집중한 것과 달리 미국의 역사와 그 자신의 뿌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영화적 바탕은 늘 멜로드라마였지만, 이 영화는 '투 러버스'(2008)와 더불어 멜로드라마의 강점을 전면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숙명적인 사랑에 휘말린 인물의 사랑과 배신, 생존을 위한 갈망과 자기 존재의 부정, 유대계 이민자들과 돈의 관계, 운명과 맞서지만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으므로 미국 이민의 역사와 더불어 러시아계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쇼 비즈니스 산업과 영화산업 내의 유대인의 지위)까지 내포한 역사적 순간을 끝까지 바라본다.

'이민자'는 미국의 관문인 엘리스 섬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데,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떠나왔지만 엘리스 섬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미국이라는 꿈에 안착하지 못한 채 떠돌면서 죽어가는 이민자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그의 어떤 영화보다 어둠의 영역이 깊게 팬 이 영화는 극장을 나온 후부터 참혹함의 강도가 높아지는 감정적 떨림을 경험하게 한다.

영화의 첫 쇼트는 엘리스 섬 근처에 서 있는 누군가가 등을 보여준다. 바다를 건너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게 될 또 다른 이민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영화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시선이 된다. 쇼 호스트로 살아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그의 이민자 시절과 앞으로 미국 땅을 밟게 될 무수한 국외자의 현재가 공존하도록 만든다. 마지막 쇼트는 배를 타고 오는 이민자의 모습을 생략했던 도입부와 달리 헤어졌던 자매가 만나고 그녀들이 보트를 타고 마치 난민처럼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다. 창가 멀찍이서 그녀들을 바라보던 남자는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겨 입국사무소의 대기실을 빠져나간다. 프레임의 왼편에 도저히 엘리스 섬을 떠날 수 없는 숙명의 덫(죽음이냐 감금이냐)에 걸린 남자가 있고 오른편에 드디어 자유를 향해 첫발을 뗀 자매가 보인다. 그레이는 그녀들을 바라보던 남자가 프레임에서 사라지는 지점과 그녀들이 지옥 같은 뉴욕을 떠나 자유를 향해 내딛는 모습 모두를 바라본다.

마지막 쇼트의 시선에서 할아버지 세대의 이민자를 바라보는 그레이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데, 남자가 다시 유대인 거주지의 진흙탕을 향하는 걸음을 따라가는 대신 쪽배를 타고 떠나는 자매를 끝까지 바라봄을 통해 사촌 동생을 살해한 남자의 삶이 실패했다거나 감금에서 해제된 자매의 삶이 더 낫다는 결론을 만들지 않는다. 새로운 국가에 받아들여질지, 쫓겨날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그들의 삶 모두를 바라보는, 선언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이 시선에는 믿음과 의지의 숙연함과 운명과의 싸움에서 후퇴한 자의 초연함, 1921년 엘리스 섬을 찾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차마 눈길을 거둘 수 없는 슬픔이 공존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