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언론인·외부 예술인 기용
- 지역 전문가조차 모르는 인물
- '보은·코드 인사' 논란 자초

- 상업 화랑대표 심사 참여 등
- 객관성 떨어진 공모도 구설
- 市 무원칙 행정 민낯 드러나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논란, 최상윤 전 부산문화재단 이사장 임용 강행과 전격 사퇴, 현 부산시립미술관장 내정자 반대 운동….

지난해 7월 서병수 시장 취임 후 부산 문화예술계에서는 잇따라 인사 잡음과 논란이 발생했다. 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허남식 전 부산시장 체제에서 서병수 시장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이 중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참신성이 떨어지는 인사가 발탁되면서 문화예술계의 반발이 거셌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시의 원칙 없는 인사와 매끄럽지 못한 행정이 원인을 제공했다.

■ 원칙 없는 인사, 반발 불러

지난 7월 31일 부산시가 부산문화회관장, 부산시립미술관장 내정자를 발표했을 당시 문화예술계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누구냐'였다.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전문가조차 모르는 인사가 발탁된 것이다.

서 시장 취임 후 교체한 부산의 문화예술 기관 수장은 앞선 두 기관 외에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등 총 3명이다. 사실상 부산의 문화예술을 주도하는 기관장이 모두 바뀐 셈이다.

그런데 면면을 보면 이상하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문화재단 이문섭 대표이사와 이승호 문화회관장은 언론인 출신이다. 전문가라고 보기에는 무리다. 일부 기관에서는 이미 내부에서 수장의 자질 문제가 불거져 시끄럽기도 했다.

또 시립미술관장 내정자 김영순 씨는 세 명 중 유일하게 전문가이지만 현 시립미술관장조차 이력을 제대로 모르는 외부 인사다. 지역 미술계는 지역 사정을 모르는, 더구나 지역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사를 뽑은 것은 지역 미술관장으로서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7월 뽑은 두 명의 문화재단 본부장까지 포함해 살펴보자. 도무지 일관된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능력 위주로 뽑았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문화재단의 전 문예진흥실장 사퇴와 현 본부장 두 명의 공모 과정은 원칙 없는 인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인사는 "문화계에는 전임 문예진흥실장이 특정 성향 탓에 나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슷한 성향을 지닌 두 명이 본부장으로 새로 뽑혀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단 관계자는 "전임 실장은 개인적인 문제로 나갔고, 후임 본부장은 공모를 통해 정상적으로 뽑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 객관성도 없는 인사 과정

인사 원칙도 없었지만, 인사 과정의 객관성에도 문제가 있다. 지역 미술인들이 시립미술관장 내정자를 반대하는 명분은 객관성이 떨어진 공모 과정이다.

미술인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상업 화랑 대표가 공공미술관장 공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대목이다. 미술관에 작품을 팔아야 하는 상업 화랑 대표가 어떻게 미술관 수장을 심사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시립미술관장 심사위원의 경우 시 문화예술과에서 8명, 인사혁신처에서 4명을 추천했고 시 인사담당관실에서 총 12명 중 최종 4명을 뽑아 '개방형직 선발시험위원회'를 구성했다. 논란이 된 화랑 대표는 문화예술과에서 추천한 8명 중 한 명이다. 인사담당관실 관계자는 "해당 부서에서 추천하는 인사는 될 수 있으면 반영한다"고 말했다. 시 담당 부서가 객관성 논란을 제공한 것이다. 시 관계자는 "상업 화랑 대표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오히려 미술계 사정을 많이 알아 적임자가 누군지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문화재단 대표이사 공모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현 이문섭 대표가 지난해 8월 공모에 응할 당시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이었다. 그런데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6명의 임원추천위원회 위원 중 두 명이 축제조직위 집행위원이었다. 당시 문화재단과 시가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 문화 기획자 양성 필요

인사 잡음의 원인으로 몇 가지가 꼽힌다. 먼저 보은 인사설이다. 한 인사는 "지난 1년 동안 문화계 사람들이 모이면 서병수 시장의 보은 인사가 빨리 끝나기를 기대한다는 말이 많았다"고 밝혔다. 관련 분야 전문가조차 모르는 인사가 중용되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코드 인사설이다. BIFF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논란, 문화재단 이사장 임명 강행 등은 모두 서 시장의 코드 인사 결과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1년을 겪으면서 문화계는 서 시장이 문화판을 잘 모른다는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주위에 문화 관련 자문기구도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결정적인 부분은 빈약한 전문가 집단이다. 실제로 시 내부에서 공모를 앞두고 인재 풀을 만들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추천을 받았지만 적당한 인물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동안 부산이 전문가인 문화 기획자를 양성하고 중용하는 대신 교수 집단에 의존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 예술 관련 대학교수는 "예술 분야 교수는 작가 또는 그 분야 전문가이지 중요 기관 운영자로서 적합하지 않다"며 "그동안 시립미술관 등 공공기관장을 대부분 교수가 맡은 탓에 큰 발전이 없었고 전문가 양성에도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그동안 문화 기획자 중요성을 간과하다 최근 문화재단에서 기획자 양성에 나서고 있다. 서울이 1990년대 후반부터 체계적으로 문화 기획자를 교육하고 양성한 것과 비교된다.

한 현장 기획자는 "지역 문화계는 인제야 문화 기획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전문가인 기획자 출신이 주요 기관 수장을 맡아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 부산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 부산대 협동과정, 현장 전문인 양성…지역 문화계 단비

- 짧은기간 성장 분야별 요직 자리
- 세력화 등 자성의 목소리도 공존

부산 문화계에서 부족한 인재풀을 메워줄 대안이 있을까.

최근 인사 문제가 불거질수록 주목받는 곳이 있다. 바로 부산대 예술문화와영상매체협동과정 대학원(부산대 협동과정)이다. 부산대 협동과정 출신 중 상당수가 부산 문화계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김광회 부산시 문화관광국장과 부산문화재단 황해순, 서영수 본부장이 협동과정 출신이다. 또 부산문화회관과 영화의전당,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 각 문화원, 문화예술 단체 등에도 적지 않은 협동과정 출신이 일하고 있다.

2002년 문을 연 부산대 협동과정은 매년 신입생이 증가할 정도로 짧은 기간 급성장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현장에서 뛰어다니던 활동가들이 뒤늦게 입학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산대 협동과정의 길지 않은 역사에 비해 각 분야 핵심에 졸업생들이 포진해 있다. 일부 졸업생 또는 재학생들은 한 달에 한 차례 포럼을 열고 부산의 현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기획자 등 현장 전문가 양성에 소홀했던 부산 문화계에 부산대 협동과정 출신은 큰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문화계도 부산대 협동과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그동안 부산 문화계의 지형도를 보면 부산예총과 부산민예총이 오랫동안 두 축을 담당했다. 여기에 최근 몇 년 동안 청년 문화가 가세하면서 부산 문화판에 활력이 돌았다. 새롭게 떠오른 것이 부산대 협동과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산대 협동과정 출신들이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세력화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심지어 협동과정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있을 정도다.

한 문화계 인사는 "부산대 협동과정 출신의 부상은 엄연한 현실이다"며 "이들이 세력화해 자기들 이익을 추구하는 데 매몰되지 않고 부산 문화계 발전에 공헌한다면 문화판 전체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