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출범한 부산문화재단이 정책 개발 등 중요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사진은 부산 남구 부산문화재단이 있는 감만창의문화촌 전경(왼쪽)과 내부 모습. 김성효 기자

- 올해 책정 사업비 254억 중
- 자체적으로 쓸 돈 48억뿐
- 전체 인력 절반 계약직
- 컨트롤타워로서 기능 잃어

- 市조례도 지원·자문만 허용
- 정책개발 금지 족쇄 채워
- 납득 못할 인사, 추락 부추겨

- 문화행정 전면에 나선 市
- 알맹이 없이 소리만 요란

지역 문화계에서 부산시의 독주가 이뤄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문화계 인사들은 부산문화재단 대신 시가 지역 문화계를 주도하면 문화의 다양성과 유연성, 창조성을 가로막을 우려가 크며 실제로 그런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된 까닭일까.

■ 문화재단, 위탁기관 전락

2009년 출범한 문화재단은 부산의 문화 컨트롤타워와 상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시와 함께 지역 문화 정책을 세우고 예술가 발굴과 지원 등으로 지역 문화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역할을 할 줄 알았다.

재단 출범 후 6년. 문화재단은 애초 기대와 달리 시 위탁기관으로 전락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올해 문화재단 사업비는 254억 원이다. 이 중 문화 바우처, 문화예술 교육 등 국가와 시의 단순 사업 대행이 사업비의 81%에 달한다. 이와 반대로 문예진흥기금과 시비, 자체 자금으로 마련한 실제 사업비는 48억 원으로 19%에 못 미친다. 그나마 2012년 29억 원, 2013년 34억 원, 2014년 43억 원으로 증가한 게 이 정도 수준이다.

이마저도 문예진흥기금 고갈로 내년부터 불투명하다. 이런 배경 탓에 문화재단 직원들은 자신의 처지를 빗대 '택배 회사' 직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화재단의 인력 구성도 비정상적이다. 직원 50명 중 25명이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사업 관련 계약직이다. 특히 복지팀 창작공간팀 교육팀은 팀장을 제외한 직원이 모두 계약직이다. 이 중 재단의 주요 임무로 기대를 모은 정책 수립 또는 정책 연구 인력은 사실상 없다. 시가 최근 입법 예고한 '부산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 지원 조례 전부 개정 조례안'을 보면 재단 사업은 '문화 관련 정책개발 지원과 자문'으로 못 박았다. 정책 개발은 금지당했고 그럴 인력조차 없는 게 문화재단의 현실이다.

또 문화재단은 출범 당시 오는 2018년까지 매년 40억 원씩 시에서 출연받아 총 5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고 금융권 이자로 문화진흥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시의 출연 금액이 매년 20억 원 선에 그쳐 현재 286억 원에 머물러 있다.

■ 문화재단의 추락 배경은

지역 문화계는 문화재단의 위상이 추락한 배경 중 하나로 인위적인 물갈이를 꼽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3월 차재근 당시 문예진흥실장을 임시조직인 전략기획단장으로 발령낸 인사다. 차 전 실장은 남송우 전 대표이사와 함께 문화재단을 실질적으로 이끈 인물이다. 차 전 실장에 대한 전격적인 인사는 스스로 물러나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었다. 결국, 차 전 실장은 지난 4월 사표를 내고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으로 옮겼지만, 부산 문화계에 적잖은 여파를 남겼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띈다. 문화재단은 애초 지난 1월 직제규정을 개편해 본부장 두 명을 두도록 했다. 하지만 3월 차 전 실장 발령 때도, 4월 차 전 실장이 그만뒀을 때도 본부장 공개모집을 하지 않았다. 직제규정을 바꾼 지 6개월이 지난 6월 말 모집 공고를 내 7월 중순에 본부장 두 명을 뽑았다. 재단을 실질적으로 이끌 본부장 자리를 6개월 동안 비워둔 것이다.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가 문화재단 추락을 부채질했다.

■ 시가 주도권-비전 없는 1년

문화재단의 힘이 빠지면서 시가 전면에 나섰다. 그렇다면 시의 '무기'는 무엇일까. 먼저 시가 '보조금' 명목으로 지원하는 예산을 들 수 있다. 문화재단의 실질 사업비는 올해 48억 원, 지난해 43억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시가 문화 관련 단체로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지난해 총 84개 항목에 138억 원에 달했고 2013년은 82개 항목 120억 원이었다. 문화재단 사업비의 세 배 정도 수준이다. 지원 내용은 국제 행사비, 협회의 사업비 등 다양하다. 문화재단은 공모를 통해 지원 대상을 결정하고 지원도 한시적이지만, 시의 보조금은 공모 과정도, 시기 제한도 없다. 실제 문화재단 공모에서 떨어진 뒤 시의 보조금을 받는 행사나 단체도 여럿 있다. 시가 보조금을 통해 각 문화예술 단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다.

정책 수립도 시가 장악한 분야다. 시는 최근 '청년문화 육성·지원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현재 '부산 예술인 실태 조사 및 복지정책'과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른 '5개년 시행 계획'을 수립 중이다. '문화예술·영상·관광을 연계한 부산문화관광 진흥전략'도 짜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지난 1년 동안 서병수 부산시장은 문화예술 분야 비전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다.

■ 기존 사업 재탕, 발표만 요란

시가 주도하는 정책의 문제점은 내용이다. '청년문화 육성·지원 추진 계획'은 5년간 투입되는 218억 원의 예산은커녕 당장 내년 사업비 32억 원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부터 했다. 더욱이 신규 사업이라고 밝힌 '청년문화인력 인큐베이팅'과 '청년문화 육성 아카데미' 사업은 현재 문화재단에서 시행 중인 '문화예술 컨설팅' 사업과 유사하다.

이 밖에 지역문화진흥법이 지난해 1월 제정됐는데 '5개년 시행 계획'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시도 고민이 많다. 시의 조직을 보면 문화관광국 내 문화예술과가 총괄하는 구조인데, 이 중 실제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곳은 문화예술진흥팀뿐이다. 사무관 팀장 1명과 직원 11명이 부산 문화예술 전체를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직원 개개인의 업무량이 많아 야근이 잦은 부서로 알려졌는데, 보직 순환으로 말미암아 평균 1~2년, 길어야 3년 정도 근무하고 이동하는 탓에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 "문화 컨트롤타워 민관 함께 꾸리자"

- 부산문화계 인사 한목소리

- "市 전문가 없어…힘 모아야 "

'민관이 함께 하는 문화 컨트롤타워를 만들자'.

부산의 문화계 인사들은 지역 문화정책 방향을 세우기 위해 민간 전문가와 행정기관이 함께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화를 포함해 여러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는 "순환 근무하는 공무원의 특성 탓에 부산시에는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며 "민간 전문가와 공무원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해서 정책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동안 부산에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여러 면에서 전환기에 있는 지금이 컨트롤타워를 만들 수 있는 적기"라고 주장했다.

공연 분야의 또 다른 인사는 "현재 부산 문화계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든다"며 "나를 포함해 많은 전문가가 부산을 걱정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민간 전문가가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무원과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민관 기구가 어렵다면 현재 공무원 조직 내에 민간 전문가가 전문 공무원 형태로 근무하면서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 행정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간 전문가 중 상당수는 누군가가 앞장서면 동참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 시가 부산 문화계의 목소리를 한 곳에 담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