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라는 생소한 말이 여기저기서 깃발처럼 펄럭이기 시작하던 1990년대 이전 헤비메탈 전성기 때부터 부산은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를 무수히 배출한 록의 메카였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출몰해 음악팬의 취향도 점점 세분되고 있어 헤비메탈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부산에선 많은 헤비메탈 밴드들이 과거의 영광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의 음악을 지켜나가고 있다.

■ 거칠고 폭발적인 여성보컬

언제부턴가 무시무시한 신인 메탈 밴드가 등장했다는 풍문을 듣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벼르고 벼르다 경성대학교 앞 라이브 클럽 리얼라이즈에서 메탈코어 밴드 매닉시브의 라이브를 목격했다. 다른 장르에 비해 멤버들의 고령화가 심한 메탈 신에서 매닉시브의 보컬 오나은은 드물게 갓 스무 살이 넘은 앳된 여성이다. 저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온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거칠고 앙칼진 쇳소리의 사자후에 우선 압도되었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들이 웃옷을 벗어 던진 채 바닥이 쿵쿵 울릴 정도로 무대 앞에서 날뛰고 있었지만 위축되기는커녕 긁어대는 기타와 죽어라 부숴대는 드럼 굉음의 메탈 사운드가 벼락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마치 판타지 영화나 게임 속의 여전사처럼 카리스마가 작렬했다. 몇몇 팬이 '쳐키'라는 별명을 외쳤다. 인형같이 동그랗고 앳된 얼굴이 무대 위에서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참 적절한 별명이다. 작은 체구에 숨겨진 엄청난 소리의 원천을 묻자, 절반은 깡이지만, 역시 체력소모가 많아 무대 위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프리다이빙과 요가로 늘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고 한다. 힙합이나 대중가요 등 여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겨 듣지만, 그중 메탈은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대신 그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이 작은 차이로 대한민국은 세계의 메탈 신을 찾아봐도 희귀한 여성 그로울링(저음을 강조한 스크리밍 창법) 보컬 보유국가가 되었다(너희 나라는 핵 있느냐? 우리나라엔 매닉시브가 있다).

■ 스피디한 메탈코어 밴드

매닉시브는 2012년 연말 결성된 메탈코어 밴드다. 메탈코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음악 장르 중 가장 강력하고 공격적이며 스피디한 헤비메탈에 그루브와 멜로디를 더한 음악이다. 보컬 오나은과 팀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 박준용, 두 명의 기타리스트 김영목, 김세준 최근 멤버 교체로 새로 합류한 드러머 임경현 총 5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2013년 부산의 대표적인 인디레이블 중 하나인 리얼라이즈 레코드에 합류해 그해 6월에 한정판 데모 앨범을 발매했고, 지난해 1월엔 첫 번째 정규앨범 'Not A Puppet'을 발표했다. 앨범에 수록된 10곡의 가사가 전부 영어로 되어 있는 이유는 그로울링 보컬의 특성상 어감과 리듬을 살리기 위해서였고,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여타 메탈 밴드들보다 곡마다 개성과 특징이 뚜렷하고 장르의 폭이 넓다는 것이 매닉시브의 강점이다. 장르를 따지는 것보다 매닉시브의 음악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메탈이란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실험과 시도를 거듭했고 그런 부분을 팬들이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한다.

■ 일본 호주 등 해외 공연 계획

도시철도 2호선 민락역 내에 있는 민락 인디트레이닝센터에서 합주하며 주로 라이브 클럽 리얼라이즈에서 공연을 많이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지방 공연 초청도 줄을 잇는다. 지난달 있었던 부산록페스티벌에서도 뜨겁고 격렬한 무대로 호평을 받았고 다음 달엔 서울 잔다리페스티벌과 인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지난 7월엔 일본 후쿠오카 공연도 잡혀 있었지만 태풍 탓에 아쉽게 취소되었다고 한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리얼라이즈 레코드에서 일본과 호주, 말레이시아와 교류 중이다. 한국을 벗어나 최대한 활발하게 외국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헤비메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역시 시애틀이나 LA 등 바다를 낀 도시들이 내륙보다 거칠고 극단적이며 공격적인 음악 성향이 특히 강하다고 한다. 빨리 해외 진출이 이어져 동방의 메탈 시티 부산의 위상을 해외 만방에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 앨범에 수록될 곡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지만, 1집 앨범이 결성 1년 만에 발표된 앨범인 만큼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도 있어, 2집 앨범은 더욱 발전된 매닉시브를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2016년 가을쯤 발표할 계획이다.

■ "라이브 공연서 직접 느껴보라"

10년 전만 해도 별다른 홍보 없이도 라이브 클럽이 미어터질 정도로 관객이 몰리기도 했지만, 간편하게 즐길 볼거리가 넘쳐나고, 방송이 음악 장르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는 지금, 헤비메탈은 매체나 대중에게 점점 더 소외되고 있는 것 같아, 분위기를 전환할 여러 가지 방안을 계획하고 시도해보고 있지만 고민을 거듭할수록 '결국 우리가 더 잘하면 된다'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돌아온다. 메탈의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할 때도 잦다. 메탈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우리 공연을 보고 팬이 되었을 때면 자신감을 얻고 가능성을 발견한다고 한다.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무슨 음악이든 손쉽게 찾아 듣는 시대지만, 직접 공연장을 찾아가 심장을 난타하는 굉음과 아드레날린을 가득 머금은 후끈한 열기를 직접 피부로 느껴봐야 그 진가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헤비메탈이다. 머지않아 해외진출로 바빠지기 전에 냉큼 라이브클럽으로 달려가 매닉시브의 무시무시한 라이브를 확인하길 바란다. 장담컨대 최소한 기본 세 번 이상 죽여줄 것이다.

작가·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