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폭음'을 연주하는 뮤지션 하쿠 승호. 도쿄에서 결성된 밴드 '하이누'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임소 사진작가 제공

태풍 고니가 다가오던 저녁. 비바람이 몰아치는 광안리 해변 카페에서, 일본 도쿄에서 결성된 밴드 '하이누(hainu)'의 기타·보컬을 맡고 있고, 지난 5월 드러머 손지현과 프랑스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필립 페리에(Philippe Perrier)와 함께한 다국적 프로젝트 밴드 '트리오(trio)' 앨범을 발표했으며, 싱어송라이터로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뮤지션 하쿠 승호를 만났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사내들만의 커피 타임이라니. 어쩐지 부끄럽고 좋았다.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아예 백사장에 모닥불 피우고 나란히 앉아 함께 태풍을 기다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란 한국인 3세 하쿠 승호가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은 부산의 독립문화단체인 '재미난 복수'에 레지던시로 초청받은 2010년이었다. 할아버지가 경남 의령 출신이라 하쿠에겐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처음으로 고향을 찾는다는 의미가 있어 고향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또 다른 고향 요코하마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후 매년 한국을 방문하였고, 3년간 서울에서 생활하며 여러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지내기도 했다.

■ 부산 광안리 생활 3개월째

오는 4일 밤 열리는 '폭음의 밤' 타이틀의 공연 포스터.

5월부터 부산에 내려와 광안리 주민이 된 지 이제 3개월째다. 무심한 듯 슬리퍼를 끌고 나타난 모습이 제법 동네주민의 풍모가 느껴졌다. 우선 어떻게 지내느냐 안부를 물었더니 매일 바닷가에 나가 낚시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낚시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할아버지 댁이 홋카이도 바닷가라 어린 시절 매일 같이 할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던 기억이 있는데, 도시에서 살아온 이후 자연스레 낚시와 멀어졌다. 그러나 부산은 도시인데도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게 신기하다고 한다. 주로 보리멸, 전갱이, 고등어, 볼락 등이 잡히는데, 어제 잡은 고등어로 집에서 시메사바(고등어 초절임)를 만들었다고 했다. 일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요리를 집에서 만들다니. 먼 과거에는 사람들이 먹기 위해 농사를 짓고 사냥하는 노동을 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미 제품화된 고기를 사니까, 낚시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생명 순환과정의 경험이라는 하쿠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두 가지 생각했다. 일단 하쿠는 나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것 같다. 사용하는 어휘 수부터 급격하게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이러다 타이틀을 '우리 동네 강태공'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급히 음악으로 화제를 돌렸다.

■ 하이누 '적막한 폭음' 향연

꼬맹이 때부터 따라다녔던 11살 차이 나는 형님 츠지야 토시오와 함께 2007년에 밴드 하이누를 결성했다. 하이누란 팀 명은 과거 일본 홋카이도 지역 원주민인 아이누 족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이누족 언어는 소리를 표현하는 말이 어느 부족보다 많았다고 한다. 인간이란 뜻의 아이누(ainu)에 휴먼을 뜻하는 H를 덧붙여, 인간과 인간이 공명시킬 수 있는 그런 소리, 그런 음악을 지향하는 밴드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익스페리멘탈, 또는 포스트 록으로 소개할 수 있겠다. 하이누의 공연을 처음 목격한 건 2013년 부산대학교 정문 앞에서 있었던 제로 페스티벌 야외무대였다. 하이누의 음악은 감상 보다는 '체험'한다는 말이 더 적절한 음악이다. 기타와 드럼, 이토록 단출한 구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하고 격정적인 소리의 향연을 펼쳐내고 있었다. '적막한 폭음'이라는 모순된 표현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으니 직접 체험해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 4일 경성대 앞 클럽 공연

때마침, 다시 없는 체험의 기회가 돌아왔다. 오는 4일 금요일 밤 9시. 경성대학교 앞 라이브 클럽 '바이널 언더그라운드'에서 서프 록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인디 록을 지향하는 음악성과 비주얼을 고루 갖춘 핫한 부산 밴드 세이수미와 함께 '폭음의 밤' 이란 타이틀로 공연을 한다. 하이누의 또 다른 멤버 츠지야 토시오가 이 공연을 위해 입국하니, 엄밀히 말해 내한공연이다. 그럼에도 입장료는 단돈 1만 원이다.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구성을 보셨는가? 사실 2만5000원은 받아야 마땅한 일이나, 백날 떠들어도 결코 짐작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을 공명시키는 놀라운 음악적 체험을 널리 알려 인간을 복되게 하려는 깊고 착한 뜻에서 티켓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하였다고 하니, 어서 소문내어 공연장을 꽉꽉 메우자.

■ 올 11월 ep 앨범 녹음 계획

공연 후 부산예술지구 p에서 올해 11월 발표될 '하이누'의 ep앨범을 녹음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음악적 실험을 위해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 볼 계획도 있다고 한다. 3개월간 동네주민으로서 부산에 대한 인상을 물으니, 서울보다 밥값이 싸서 좋고, 부산 사람은 술을 먹는 양이 압도적인 것 같다고 했다. 그간 하쿠 승호가 만나왔던 사람들이, 주로 예술가나 기획자, 뮤지션이었을 테니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 우선 나부터 부산 사람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는 데 다소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반성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부산의 뮤지션들은 여유가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그 이유인즉슨, 서울이나 도쿄에선 인디밴드들이 개인 연습실을 갖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인데, 부산 밴드들은 상대적으로 개인 연습실에서 합주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했다. 흥미로운 얘기였으나, 나도 잘 모르는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질까 봐 더 묻지는 못했다. 특히 부산의 관객은 음악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나 또한 한 명의 관객으로서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오는 금요일. 모두 함께 공연장에 가서 증명하도록 하자.

작가·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