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이상하리만치 과거의 어떤 시점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다.

광복 70주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영화계가 일본 지배 시기나 광복이란 사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암살'의 1933년과 '경성학교'의 1938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연관이 있다. 최동훈 감독은 당대 조선인의 독립에 대한 염원, 독립군의 실상, 민족주의와 아나키즘의 혼재, 친일파에 대한 테러가 불가피했던 혼탁한 역사를 돌아보거나 독립군에서 제국 경찰로의 손쉬운 신분 세탁을 거친 친일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해영 감독은 버림받거나 병약한 소녀들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공포를 내선일체의 광기가 불러온 파괴적 생체 실험과 식민지 조선에서 벗어나 일본제국으로 편입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뒤틀어진 욕망과 연결짓는다.

김광태 감독의 데뷔작 '손님'은 휴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53년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폐쇄된 마을을 찾아온 손님으로 인해 이곳의 비밀이 드러난다. 마을 촌장이 공포와 편견으로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는 방식, 일본 군복과 칼을 꺼내 드는 장면, 쥐를 없애주면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쉽게 파기하는 것에서 박정희라는 유령과 계엄령에 놓인 한국을 연상시킨다. 촌장의 강력한 지배에 갇히고 그의 거짓에 속은 어른들의 무지로 이 마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한 무덤으로 변하게 된다.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는 유신 말기인 1978년을 말한다. '극비수사'가 포착한 시대의 공기는 부잣집 아이를 노린 유괴가 횡행하던 시절, 범죄자 찾기에 혈안이 된 경찰과 미신에 기대서라도 살아있다는 믿음으로 아이의 목숨을 구하려는 두 인물의 대립에서 드러난다.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다른 편은 아이의 생사를 걱정하는 것을 통해 당대 사회의 가치가 중점을 두는 영역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들은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해결되지 못한 채 떠도는 문제들의 시발점과 현재의 사회상이 어떤 뿌리에서 비롯된 것인지 찾으려고 시도한다. 일제의 강제적인 근대화를 거치고 좌우의 진영으로 나뉜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해방과 자유를 느끼지 못했다. 이후 유신 시기와 1980년대까지 이어진 군부 독재의 시기를 지낼 때도 억압으로 인한 폐쇄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돌출된 사상 대립과 과도한 반공 열기가 초래한 비극의 잔재는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의 지점도 '연평해전'의 배경인 2002년이다. 월드컵의 열기가 한국을 뒤덮었고 고양된 시민의식에 대한 자부심이 한쪽을 채울 때, 바다에서 북한과 교전 중인 젊은이들이 죽었고 그해 12월 고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 영화는 월드컵 경기라는 국가적 축제에 가려진 죽음의 실상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에 충실하지만, 국가라는 키워드는 의뭉스러운 화법처럼 느껴진다. 국가의 명예를 위해 애쓰는 선수들과 국가를 수호하는 군인들은 실상 비슷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개봉을 앞둔 '아가씨'의 1930년대, '서부전선'의 1953년까지 이어진다면 2015년은 과거 회귀의 대량 생산이라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