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파견한 특사들. 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이다.

- 일제 침탈 국제사회 고발하려
- 고종이 파견했던 헤이그 밀사
- 강국에 기대면 통할거라 생각
- 순진·무지한 외교 탓에 실패

- 미국 방문 새누리 김무성 대표
- "中보다 대체불가 동맹 美 우선"
- 외교 기본 망각한 위험한 발언
- 냉철하고 균형잡힌 시각 필요

제나라가 송나라를 치자, 송나라에서는 장손자(臧孫子)를 남쪽 초나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초나라 군주가 아주 기뻐하며 기꺼이 구원해주겠다고 하고는 그를 매우 환대했다. 장손자가 걱정하면서 돌아오니, 그의 시자가 물었다.

"구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뜻을 이루었는데도 이제 걱정을 하고 계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장손자가 대답했다.

"송나라는 작고 제나라는 크다. 작은 송나라를 구하려다가는 큰 제나라에 미움을 살 것이다. 이는 대개의 사람이 걱정하는 일인데도 초나라 왕은 기뻐했으니, 이는 반드시 우리의 방비를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방비를 견고하게 하면 제나라가 우리를 치다가 피폐해질 테니, 그러면 초나라만 이롭게 된다."

장손자가 돌아온 뒤에 제나라가 송나라의 다섯 성을 함락시켰는데, 초나라의 구원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 ― 한비자 '설림' 상

■강자의 외교, 원교근공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한국전 참전 미군 용사들과 유족에게 큰절을 올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일행. 국제신문 DB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7월 말부터 8일간 미국을 방문했다가 한국전 참전용사들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고 화제가 되었다. 과례(過禮)니 사대주의니 하는 비판도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국 특파원들 앞에서 "우리는 중국보다 미국이다"면서 미국을 '대체 불가능한 동맹'이라고 한 발언이 참으로 문제다. 이는 일국의 여당 대표로서 외교의 기본을 망각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중국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 강대국인지 몰랐을까, 아니면 딴 속셈이 있어서였을까?

'중국보다 미국이다'라고 한 발언에 동조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한국의 상황을 정치와 군사, 외교, 지리 등 여러 측면에서 냉철하게 살피지 않고 미국을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우방으로 여기고 기대려는 심리나 인식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기 때문이다.

전국시대부터 알려진 외교 방략에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것이 있다. '삼십육계'의 제23이 '원교근공'인데, 거기에 "원교근공의 계책은 멀리 떨어진 나라와 동맹을 맺고 이웃한 나라를 치는 것을 말한다. 지세의 제한을 받을 때는 이웃한 적을 먼저 공격하는 게 유리하고, 멀리 떨어진 적을 치는 것은 불리하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는 강대국의 입장에서 취할 외교 방략이지, 약소국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방략이다. 약소국이 이런 방략을 취했다가는 패망을 자초할 수 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는 효공(孝公) 때 상앙을 기용하여 변법을 실행함으로써 제국의 토대를 다졌다. 이어 효공의 손자인 소양왕(昭襄王)은 범수를 발탁하여 커다란 외교적 성과를 거두면서 다른 제후국들을 제압했다. 이때 범수가 주장한 것이 원교근공이었다.

"가까이 있는 한(韓)·위(魏) 두 나라는 중원에 위치해 천하의 중추라고 할 만합니다. 대왕이 패업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먼저 이들 두 나라를 쳐서 중추로 삼은 뒤에 초(楚)나라와 조(趙)나라를 제압해야 합니다. 조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가 가까이 다가올 것이고, 초나라가 강해지면 조나라가 다가올 것입니다. 조·초 두 나라가 다가오면 제(齊)나라는 틀림없이 진나라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두려워하며 진나라를 섬기면 한·위 두 나라는 이내 무력해지고, 천하의 중추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이 계책은 소양왕 이후에도 계속 채택하여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반면에 진나라에 이웃해 있던 약소국 한나라는 가장 먼저 공격받아 멸망했다. 이렇게 보면, 원교근공은 결코 약소국이 채택할 수 있는 방략이 아니다.

■내치 없는 외교의 비극, 이준

조선시대 중기의 뛰어난 문장가이자 학자로서 명나라를 대상으로 한 외교문서도 작성했던 신흠(申欽, 1566∼1628)이 쓴 글에 '비왜설(備倭說)'이 있다. 일본에 대비해야 한다고 쓴 글인데, 그 가운데 일부다.

"임진년의 병화를 교훈으로 삼을 만한데 삼지 않고 있으니, 만약에 다급한 상황이라도 벌어진다면 그나마 임진년처럼 해보려고 해도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위아래 모두가 멍하니 각성하지 못하고 있으니 내 또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 그러므로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필시 왜인의 화를 다시 입게 될 것이다. 개혁의 방안은 다른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직 뇌물을 바치는 장수를 기용하지 않으면 되고, 권력이 있는 자에게 맡기지 않으면 되고, 총애를 받는 사람에게 위임하지 않으면 된다. … 그러므로 옛날 정치에 대해 말한 자들은 외침을 물리치는 방안에 대해 거론할 때는 반드시 국내의 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에도 조선의 지배층은 붕당 정치에 열을 올리다가 국내 정치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고, 일본에 간 통신사들도 오만한 마음으로 일본인들을 대하다가 실상을 보지 못해 훗날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지 못했다. 그 결과 1905년에 강제로 일본과 을사조약, 아니 을사늑약을 맺었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은 전덕기, 이동휘 등은 밀사를 파견하여 '을사조약'이 일본의 협박으로 강제로 체결된 것임을 전 세계에 알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고종에게 신임장을 받아 특사로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이준(李儁, 1859∼1907)을 정했다.

이준은 고종의 신임장을 들고 만주의 이상설, 러시아의 이위종과 차례로 합류하여 헤이그로 향했다. 그러나 영일 동맹을 맺은 영국과 일본 대표들의 노골적인 방해로 일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일본 쪽에서 보면, 이것이 바로 원교근공이다.) 각국 대표들과 언론에 온갖 노력을 다해 호소했음에도 결국 공감을 얻지 못하자 이준은 울분을 못 이겨 애통해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 사건으로 고종은 폐위되고 순종이 즉위하였다. 이 모두 한비가 일러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 탓이다.

"현명한 군주는 나라 안을 견고하게 하므로 나라 밖에서 실패하지 않는다. 가까운 데서 실책을 저지르고도 먼 데서 낭패를 보지 않는 일은 없다. 그래서 주(周)나라가 은(殷)나라를 빼앗는 일이 뜰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것처럼 쉬웠다. 만약 은나라가 조정에서 할 일을 내버려두지 않았다면 어찌 주나라가 털끝만치라도 땅을 넘볼 수 있었을 것이며, 하물며 천자의 자리를 바꿀 수 있었겠는가?" ― '안위(安危)'

■강국에 기대는 건 외교가 아니다

헤이그 밀사 사건은 당시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의 원교근공과 대한제국의 실패한 내치 및 때늦은 외교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국제 사회에 호소하면 통할 것으로 여긴 순진한 외교 태도 또한 문제였다. 외교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쌍방 관계다. 상대를 알아야 비로소 국익이 보탬이 되는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하물며 다른 나라에 일방적으로 기대는 것을 어찌 외교라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이 미국을 동맹국으로 우방으로 믿고 의지하고는 있으나, 최근 미국이 일본에 대해 취한 태도를 잘 보라. 특히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라는 미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나라 정공(定公)이 여러 공자 가운데 어떤 공자는 진(晉)나라로, 어떤 공자는 초나라로 가서 벼슬하게 했다. (이는 유사시에 구원을 요청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제나라의 여서가 왔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월나라에서 사람을 불러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다고 합시다. 월나라 사람이 비록 헤엄을 잘 친다고 하더라도 물에 빠진 아이를 결코 살리지 못합니다. 불이 났을 때 바다에서 물을 끌어오려고 하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불을 결코 끄지 못합니다. 먼 곳의 물로는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나라와 초나라가 아무리 강국이라고 하더라도 제나라가 가까이 있으니 노나라의 환난을 구해줄 수 있겠습니까?" ― '설림' 상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