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이 땀 흘려 쓴 시집이 마음에 착 달라붙는다. 이건 어떤 뜻일까. 쉬운 시? 커다란 공감력? 어쨌든.

전홍준(사진) 시인이 8년 만에 낸 세 번째 시집 '아비의 호수'(도서출판 전망)는 읽는 이의 마음에 쑥 하고 들어오는데, 동시에 뜨겁다. 삶이 울퉁불퉁하고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진솔하게 시 속에 쟁여 넣고 우려내는 시인의 태도가 행간에서 버티고 있는 느낌이다.

딸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수녀원으로 들어가 성직자가 되었다. 시인은 딸의 선택이 숭고함을 알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시인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이 상황을 섣불리 승화나 수용하는 척하지 않고, 그는 아프다고 표현한다. 시로.

'4년의 수련기를 마친 딸이 첫 서원을 했다 / 수도자란 세상 근심 내려놓고 하느님 품안에서 / 다만 기쁘게 사는 것 / 자신을 봉헌한다는 말은 교만이다 / 마지막으로 주교님의 축복기도가 있었다 / 면회하고 돌아설 때 뒤에서 철문이 닫히듯 / 聖(성)과 俗(속)을 가르는 큰 작두가 / 우리 사이를 철커덕하며 갈랐다 / 세속의 정은 여기까진가 / 생명은 본디 슬픈 수채화 같은 것 /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첫 서원' 전문)

'꽃 폭탄-봄'이라는 시는 봄을 아름답게 그리는데 어딘지 뒤틀린 심사로 심술궂게 표현했다. 시인의 복잡한 마음이 봄 풍경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일까. '작렬하는 꽃 폭탄에 나라가 초토화된다 / 한국전쟁 때보다 많은 포탄세례다 / 매화탄, 개나리탄, 목련탄은 재래식 무기지만 / 일가를 이룬 벚꽃탄은 핵폭탄이다 / 무기에는 마약성분도 있어 / 포탄을 맞은 사람들은 피난 갈 생각도 못하고 / 그 아래서 맴돌다, 뻗는다 / 취하고 취해서 / 근심보따리도 잠깐 잃어버린다.(전문)

삶의 살풍경을 많이 보아버린 나이, 그는 요즘 죽음을 더 자주 생각한다고 한다. '지금 뒤에서 순간 내 숨통을 끊어주는 의인이 있다면 / 의심 많은 나는 저승에 가서도 그를 경배할 터 /…'('아버지 산소에서' 부분)

세태와 기득권, 뒤틀린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전 시인 특유의 시도 꽤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