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 가진 자의 부정이 정당화
- 계속된 전례가 원칙으로 굳어
- 형벌을 무겁게 하는 것은
- 죄인 괴롭히기 위함이 아닌
- 사회 경각심을 일깨워
- 똑같은 범죄 막기 위한 것
- 정부 올 광복절 특별사면에
- 대기업 총수·오너 포함한다면
- 국민 대통합에 역행하고
- 면죄부의 역사 되풀이하는 꼴
"법률은 사람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으므로 어떤 사람이 보상과 사면을 받을 가치가 있는 행동을 했음에도 때로 법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통치자는 많은 사건에서 법의 가혹한 적용을 완화시키고 일정한 범법자들을 사면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 마땅하다. 정부의 목적은 가급적 최대한 만인을 보조하는 것이므로, 심지어 죄를 지은 자라도 무고한 자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입증되면 사면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 존 로크의 '제2론(또는 통치론)', '대권(大權)에 관하여'
■비리 기업인의 사면은 허울이다
| |  |
| 존 로크 |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대통합을 위한 사면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곧바로 이에 대해 찬반 논란이 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동안 사면권 남용이 없도록 사면권 행사를 최대한 자제해 온 것을 자부했던 대통령이 갑자기 대대적인 사면이 있을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법이나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의 총수들이나 오너들도 포함할 것으로 예상돼 더욱더 논란이 되고 있다. 24일에 대기업 총수 17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것도 그런 예상을 뒷받침한다.
경제인들의 입장에서는 사면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이 반기는 것은 그들의 동업자 의식에서 말미암은 것이지, 결코 국가의 경제와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그러자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경제발전에 기여했으며 당장에는 투자활성화나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도 사면이 필요하다고 말하겠지만, 과연 지금 한국의 경제문제가 그들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총수나 오너의 부재로 말미암은 것일까? 결코 아니다. 한국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음에도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진정한 법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다. 가진 자에게, 힘 있는 자에게 법이 손을 들어주면서 불평등을 법이 더욱더 조장하고 있어서다.
따라서 법치를 뒤흔들면서 불평등을 조장하는 짓을 대권을 쥔 대통령이 앞장서서 할 일은 결코 아니다.
만약 참으로 한국 경제를 살리고 진정한 '창조경제'를 이루기를 바란다면, 청년들이 일할 자리를 서둘러 마련하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사실 한국 경제는 무수한 중소기업들이 든든하게 받쳐주었기 때문에 급성장했고 대기업 또한 중소기업들을 바탕으로 거대해졌다. 그럼에도 대기업들 또는 재벌들이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에 저지르는 횡포는 얼마나 심한가?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허울뿐인 구호가 되는데, 이는 제쳐두고 오히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면서 기업을 사적으로 이용한 경제인을 사면한다는 것은 '국민대통합'에 역행하는 일이며, 앞으로도 저지를 기업인들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미리 면죄부를 주는 것일 뿐이다. 한비가 말했다.
"이제 나라를 다스릴 줄 모르는 자들은 모두 '형벌을 무겁게 하면 백성들이 상한다. 형벌을 가볍게 해도 간악한 짓을 그치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꼭 무겁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는 다스림의 이치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다. 무릇 무거운 형벌이라야 그치는 자는 결코 가벼운 형벌로는 그치지 못하지만, 가벼운 형벌로도 그치는 자는 반드시 무거운 형벌로도 그친다. 이런 까닭에 군주가 무거운 형벌을 쓰면 간사한 짓이 모조리 그친다. 간사한 짓이 모조리 그친다면, 어찌 백성을 상하게 할 수 있겠는가?" ― '육반(六反)'
■엄정한 법 집행이 정의를 세운다
영국의 정치철학자로서 국가를 '사회계약'의 산물로 파악하여 최초로 체계적인 논의를 펼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리바이어던'(1651년)에서 인간이 '추론상의 결함이나 오류' 즉 그릇된 원칙으로 말미암아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제 어디에서나 힘을 가진 자, 승리한 자는 아무리 부정한 행위를 해도 정당화되는 것을 보고서, 또 유력한 사람들은 유유히 법망을 빠져 나가고 약자나 혹은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만 범죄자가 되는 것을 보고서, 이를 추론의 근거로 삼아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정의라는 것은 빈말일 뿐이다. 자신의 노력과 모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자기 것이다.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다 그러한데, 어찌 그것이 불의일 수 있겠는가? 과거의 전례들은 현재 그렇게 해도 좋다는 훌륭한 근거가 아닌가?' 이러한 종류의 추론을 받아들이고 나면,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는 범죄가 되지 않는다.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한 사람들의 성공여부에 의해 범죄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재벌 총수들이나 오너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인식 또는 추론상의 오류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몇 년 전,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 정몽구 회장은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에 대해 형량을 줄이거나 여론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기부하겠다는 의시를 표시했다. 그것은 곧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런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은 토마스 홉스는 "부의 크기로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공공의 정의를 매수하거나, 혹은 금전이나 다른 보상으로 용서를 얻어,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흔히 범죄를 저지른다"고 말했다.
토마스 홉스의 이 말에 대해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할 대기업 총수나 오너가 있을까? 그들은 오로지 부의 크기만을 최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런 인식이 깔려 있기에 갖가지 위법과 부정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행세하고 있다. 지금이 부의 크기로 인간 됨됨이나 덕성을 재도록 부추기는, 그런 자본주의시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법의 적용은 더욱 엄격해야 하고, 불법이나 비리를 저지른 경제인의 사면은 더욱 삼가야 한다. 자칫 경제와 관련된 범죄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동안 대기업 총수들이나 오너들, 경제인들의 부정과 비리가 좀체 줄지 않고 더욱더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입증되지 않는가?
"형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죄인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명한 군주의 법은 죄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도적을 다스린다는 것은 판단의 대상이 된 자를 다스린다는 뜻이 아니다. 판단의 대상이 된 자를 다스린다면, 이미 죽은 자를 다스리는 꼴이 된다. 도둑을 형벌에 처한다는 것은 형벌의 대상이 된 자를 다스린다는 뜻이 아니다. 형벌의 대상이 된 자를 다스린다면, 이는 죄수를 다스리는 꼴이 된다. (법이란 사후에 처벌하는 것보다 미연에 방지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간악한 죄를 엄중하게 처벌하여 나라 안의 사악한 행위를 그치게 하는 것, 이것이 다스리는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무거운 형벌을 받는 자는 도적인데, 이를 보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양민이다. (이리하여 양민들은 죄를 지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잘 다스리려 하는 자가 어찌 형벌을 무겁게 하는 일에 머뭇거리겠는가!"― '육반'
■공공선을 벗어난 대권은 남용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대권을 쥐고 있으므로 때로 법률이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을 명령하고 집행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공공선과 공공의 이익이다. 이를 거스르는 순간, 그는 대권을 남용하는 자가 된다. 시민정부의 목적에 대해 논의한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제2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둔하고 사악한 군주는 그의 전임자들이 법의 지시 없이 행사하던 권력을 공직상의 권리로서 자신에게 속하는 대권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공공의 이익과 구분되는 이익을 취하거나 추진하기 위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행사하고자 하지만, 이로 인해 인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게 만들고, 나아가 그들의 선을 위해서 행사되는 동안에는 만족하여 묵시적으로 허용하던 권력을 이제는 제한하고자 하는 계기를 촉발하게 된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싣습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