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스님의 하얀 연꽃 <1> 처음과 같이 깨어있는 삶

익숙함의 함정에 빠져 잃어버린 것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5-07-17 20:12:17
| 본지 11면

어느 해 여름이었다. 해 질 무렵 암자 마당 한가운데를 두꺼비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기어가던 두꺼비가 갑자기 멈춰 선 곳은 암자 마당 한 곳을 지키는 진돗개 진진이 앞이었다. 두꺼비는 순간 놀라는 모습을 보이며 바위처럼 그대로 멈춰버렸다.

진진이가 입으로 물어서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켜보고 있던 내가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두꺼비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일 때, 진진이가 발로 두꺼비를 건드려보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두꺼비는 몸을 바싹 움츠린 채 숨도 쉬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진진이는 몇 번 관찰과 탐색 끝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두꺼비 가는 길을 막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해가 질 무렵 두꺼비는 무슨 볼일인지 마당을 가로질러 진진이 앉아있는 앞을 지나가는데 그들 모습이 재미있었다. 두꺼비도 마치 어제 통과의례로 이젠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것을 허락받은 듯 진진이 쪽을 힐끗 볼 뿐 그대로 앞을 통과했고, 진진이도 두꺼비에게 별로 관심 없다는 듯 한 번 쳐다보고는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었다.

그 후로 여름 내내 두꺼비는 해가 지면 당당하게 진진이 코앞을 통행하고 다녔다.

언젠가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도마뱀이 강적 앞에서 몸을 떠는 파장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을 보았는데 강적 앞에서 떠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은 동물도 사람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 적당히 판단한 뒤에는 그 여름날 두꺼비처럼 느슨해진다.

처음 불문에 들어왔을 때는 말 그대로 층층시하였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잘하고 못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어른 스님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예, 아니요 라는 대답만 할 수밖에 없어서 경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무서움과 두려움 대신 "또 저런 일로 아래 스님들을 야단치시네"라며 대담한 눈빛과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방송을 할 인연이 되어 생애 처음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 생방송을 한 시간 진행하고 나오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내가 이 방송을 대표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말 한마디에서도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이 나가는 몇 분의 그 시간에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전대를 처음 잡았을 때를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운전대가 부서져라 두 손이 터질 듯 꽉 부여잡고 앞만 보고 가던 초보시절을. 이제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위험한 딴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익숙해졌다고 자만하는 것이다. 그러다 큰 사고가 나거나 접촉사고가 생기면 말한다. "운전은 초심을 지켜야 해" "익숙해졌다고 쉽게 생각하면 위험해"라고.

매사 그랬다. 처음에 긴장되고 두렵고 생소해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나 자신이 아주 잘해서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조금 손에 익숙해졌을 뿐 완전함은 아니었다. 어떤 상황이든 일이든 사람이든 간에 타성에 젖어버린 것이었다. 처음처럼 타성에 젖지 않고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것이고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 여름날 마당을 기어가던 두꺼비가 진진이가 아닌 다른 강적을 만났을 때도 "아무 일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라는 기억으로 타성에 젖어 깨어 있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 삶의 모습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타성에 젖어 나중에는 삶에서 추구하는 것도 무디어지고 위험한 상황에 처해서도 인식하지 못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