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민생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을 '표결불참'으로 무산시키자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았다. 국제신문 DB

- 전국시대 위나라의 부국강성
- 진시황의 첫 천하통일 대위업
- 모두 변법통한 개혁이 밑거름

- 변화의 시대 역할 중요한 국회
- 낡은 기득권과 익숙함에 안주
- 제대로된 법 제정·개정보다는
- 허구한 날 정쟁에 혈안이니…

"통치술을 알지 못하는 자는 꼭 '옛 제도를 바꾸지 말고, 익숙한 법을 바꾸지 말라'고 말한다. 성인은 바꾸느냐 바꾸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상황에 따라 다스릴 뿐이다. 그렇다면 옛 제도와 익숙한 법을 바꾸느냐 바꾸지 않느냐는 옛날의 것이 지금도 알맞은가 알맞지 않은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윤이 은(殷)나라의 제도를 바꾸지 않고 태공이 주(周)나라의 제도를 바꾸지 않았다면, 탕왕과 무왕은 왕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관중이 제나라의 제도를 바꾸지 않고 곽언(郭偃)이 진(晉)나라의 제도를 고치지 않았다면, 환공과 문공은 패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 한비자 '남면(南面)'

■변법은 제국을 구축하는 토대다

춘추시대에 140여 개나 되던 제후국이 고작 20여 개로 줄었다. 그 가운데서 일곱 개 나라를 중심으로 각축을 벌였으니, 이른바 전국시대다. 전국시대에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나라는 위(魏)나라다. 위나라는 본래 진(晉)나라의 경대부(卿大夫) 가운데 하나였으나, 기원전 453년에 역시 경대부 가문이던 지백씨(知伯氏)를 멸망시키면서 한씨(韓氏)·조씨(趙氏)와 더불어 진나라를 셋으로 쪼개 하나를 차지했다. 곧바로 위사(魏斯)가 통치하면서 위나라는 강성해졌는데, 이에는 이회(李悝)를 재상에 임명하여 개혁을 실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회의 개혁은 변법(變法)을 실시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는 "먹는 것에는 노동이 있고, 녹봉에는 공이 있으며, 포상은 반드시 실행하고, 처벌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대부의 가문이 대대로 그 지위와 녹봉을 세습 받으며 권세를 누리던 세경세록제(世卿世祿制)를 폐지하고, 경제에서는 땅의 힘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경작을 장려하고 농업을 발전시켰다. 이어 각 제후국의 입법 성과를 모아 최초로 체계적인 성문 형법전인 '법경(法經)'을 편찬했다. 위나라 군주 위서는 이 '법경' 위에서 통치술을 발휘하여 위세를 떨쳤고, 마침내 재위한 지 44년이 되던 기원전 403년에 주(周) 왕조로부터 '위문후(魏文侯)'로 봉해졌다. 이때를 대개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그러나 위나라는 문후의 손자인 혜왕(惠王) 때 동쪽으로 제나라에, 서쪽으로 진나라에 패배함으로써 영토를 빼앗겨 점점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이는 철저하게 법치(法治)를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특히 변법을 통해 개혁을 이룰 만한 인재였던 공손앙(公孫鞅)을 기용하지 않은 일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나중에 상앙(商鞅)으로 불리는 공손앙은 이회의 법가이론을 학습한 인물이었으나, 혜왕이 자신을 써주지 않으므로 서쪽 진나라로 가서 진효공을 만나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쳤다. 공손앙을 통해서 진나라는 비로소 법률체계를 확립했고, 효공 사후에도 군주들은 이 법제도를 바탕으로 통치했다. 이것이 진왕 정(政)이 천하를 통일하여 제국을 이룩하고 '진시황'이라 일컬을 수 있게 한 토대다.

이처럼 한 나라나 제국에 있어 법률체계나 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시대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를 흔히 간과한다. 그것은 기존의 법과 제도에 백성이 익숙해 있어서다. 그렇다고 이미 낡은 법과 제도를 그대로 존속하는 것은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다. 전국칠웅의 여섯 나라가 10여 년 사이에 차례로 진나라에 멸망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옛날과 지금은 풍속이 다르고 새 시대와 옛 시대는 대비하는 것도 다르다. 만약 너그럽고 느슨한 정책으로 급박하게 변하는 세상의 백성을 다스리려 한다면, 이는 고삐와 채찍도 없이 사나운 말을 모는 것과 같다. 이는 현실을 제대로 몰라서 생기는 우환이다." ― '오두(五蠹)'

■법치(法治) 바라는 법치(法痴)들

상황이 다르면 대비책도 바뀌어야 하듯 시대가 달라지면 당연히 법과 제도, 정책 등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모든 인간관계와 일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에서 급속한 변화가 이루어져 일상생활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입법 기관인 국회의 역할을 더욱더 커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작년에 국회에서 법안을 심사하는 시간이 평균 5분을 넘지 않는다는 분석 결과가 나와서 충격적이다. 선거와 의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이 19대 국회 3차 연도(2014년 5월 30일~2015년 5월 29일)의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활동 결과를 분석했는데, 17개 법안소위에서 총 489시간 회의를 열고 6221건의 법안을 심사했다고 한다. 법안 한 건당 평균 심사시간은 4분43초에 그친 것으로 나왔다. 또 각 법안심사소위에서 1회 회의에서 심사하는 법안 수는 평균 41.8건에 달했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기획재정위원회 산하 조세소위원회의 법안 한 건당 심사시간은 1분45초, 경제재정소위는 2분21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관련법은 특히 중요하고 긴요하다. 그런데 법안 하나를 심사하는 데 고작 2분여 걸렸다면, 과연 제대로 된 법안이 마련될 수 있을까? 물론 법안심사소위는 법안의 최종 입법화를 위한 1차 심사 관문에 지나지 않지만, 여기서부터 입법화가 시작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단계일 수도 있다.

'법의 제국'을 쓴 로널드 드워킨은 그 책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법 속에서 살며 법에 의거하여 살아간다: 법은 국민, 피고용자, 의사, 배우자, 소유자와 같은 지위를 만들어 준다. 법은 칼이며 방패이며 위협이기도 하다: 우리는 임금을 청구하거나, 집세의 지급을 거절하거나, 벌금을 납부하라는 강압을 받거나, 구치소에 구금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추상적이고 저 높은 곳에 있는 주권자인 법이 명한 것이라는 명분 하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법의 명령과 지시를 담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법전이 침묵하고 있는 경우에도 법이 명한 바가 무엇인지를 논의한다. 이때 우리는 마치 법이 임종시의 말처럼 너무 조그만 소리여서 명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법의 제국의 신하이며 법의 방법과 이념의 신하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논쟁을 벌이는 경우에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법에 기속된다."

우리는 법을 벗어나 살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과 국민은 법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그것은 드워킨의 말처럼 법의 소리가 너무 조그마해서 잘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를 두고서 대표를 뽑아 입법의 문제를 다루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 사람들이 법의 제정과 개정보다는 정쟁에 더욱 혈안이 되어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결국 국민이 법의 존재의의와 필요성을 잘 모르는 탓에 대표로 뽑을 때 반드시 입법과 관련된 능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간과했기 때문이리라.

■법치가 아니면 민주주의·제국 없다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았으나 심각한 정치적 갈등으로 1948년 5월 10일에야 선거가 가능한 38선 남쪽에서만 헌법제정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선출된 198명의 의원들로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제헌국회의 최대 임무는 대한민국의 법적 기초가 될 헌법을 제정하는 일이었다. 6월 23일에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고, 7월 12일에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7월 17일, 이승만이 서명한 후에 공포되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7월 17일을 국경일로 삼아 제헌절이라 했지만, 이제 이 날은 '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니 진정한 법치, 법치를 통한 민주주의, 나아가 제국의 길을 모색할 바탕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쓸모없는 지혜를 섬기는 백성이 많아지면 법은 무너지고, 힘써 일하는 자가 적어지면 나라는 가난해진다. 이것이 세상이 혼란해지는 까닭이다." ― '오두'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