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의견제시'라는 행정지도를 한 MBC TV 프로그램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

- 잘못된 세태 꼬집어 바로잡는 게 풍자
- 권력이 탄압 땐 정화 기능 사라져
- 최근 무한도전·개콘 제재 씁쓸
- 비꼬는 말도 수용한 진시황 되새겨야

"현실의 모순이 있는 한 풍자는 강한 생활력을 가지고, 모순이 화농하고 있는 한 풍자의 거친 폭력은 갈수록 날카로워진다. 얻어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자, 사지가 찢어져도 영혼으로 승리하려는 자, 생생하게 불꽃처럼 타오르려는 자, 자살을 역설적인 승리가 아니라 완전한 패배의 자인으로 생각하여 거부하지만 삶의 고통을 견딜 수가 없는 자, 역학(力學)을 믿으려는 자, 가슴에 한(恨)이 깊은 자는 선택하라. 남은 때가 많지 않다. 선택하라, 풍자냐 자살이냐." ― 김지하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

■풍자는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우스개

	KBS TV의 '개그콘서트' 중 '민상토론'의 관련 장면. 방송화면 캡처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MBC '무한도전'(6월 13일)에서 개그맨 유재석 씨가 "메르스 예방법으로는 낙타, 염소, 박쥐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하고 낙타고기나 생 낙타유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표현한 부분을 문제 삼아 '의견제시' 제재를 내렸고,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6월 14일)에서 진행자 박영진 유민상 씨가 "정부가 뒷북을 쳤다" "정부 대처가 빨랐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심하다" "낙타 고기는 도대체 어디서 먹으라는 것이냐"고 메르스와 관련해 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풍자한 것에 대해서도 '의견제시' 제재를 내렸다. 방심위에서 제재를 가한 것으로 보아 그것이 '풍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풍자의 의도와 효과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모양이다.

풍자(諷刺)란 무엇인가? 풍자는 문학의 한 갈래로서, 사회적 현상이나 인물의 결함, 죄악 등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비꼬아서 표현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표현 방법이다. 냉소나 조롱, 익살, 야유, 희화화 등으로 대상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자를 보더라도 풍(諷)은 다른 사물에 기대어 말한다는 뜻이고, 자(刺)는 찌르다, 꾸짖다, 헐뜯다는 뜻이다. 따라서 다른 것에 기대어 칼로 찌르듯이 꾸짖거나 헐뜯는 것인데, 목적은 풍자의 대상이 칼에 찔린 듯이 느끼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상이 인식을 전환하여 잘못을 바로잡게 하는 데에 있다.

진(秦) 제국의 시황제(始皇帝) 때 일이다. 시황제는 원유(苑囿)를 크게 넓혀 동쪽으로 함곡관에 이르게 하고 서쪽으로는 옹(雍)과 진창(陳倉)에 이르게 하려 했다. 이에 우전(優旃)이 말했다.

"좋은 일입니다. 그 속에 새와 짐승을 많이 풀어놓아 길러서 적이 동쪽에서 쳐들어오면 고라니나 사슴을 시켜 그들을 막게 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시황제는 이 말 때문에 계획을 그만두고 말았다. '사기'의 '골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골계란 재치있고 뛰어난 말솜씨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으로, 풍자와 반어, 해학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골계열전'에는 왜소하고 외모도 보잘 것없으며 지위도 낮지만, 기지와 해학이 넘치고 반어법과 풍자에 뛰어난 인물들 일화가 실려 있다. 위에 나오는 우전은 진(秦)나라 난쟁이 가수로 우스갯소리를 잘한 인물인데, 요즘으로 치면 가수이면서 희극배우인 셈이다. 그런 그의 풍자에 무소불위 권력을 쥔 시황제조차 하려던 일을 그만두었으니, 풍자의 효과는 실로 큰 셈이다.

진 제국의 시황제가 우전의 우스갯소리를 듣고서 하려던 일을 그만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쇼였다고 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황제인 자신이 아랫사람들의 비판이나 간언, 때로 자신들을 풍자한 이야기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는 넉넉한 풍모를 지녔음을 과시하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원래 정치란 일종의 쇼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러한 쇼조차 하지 못하는 자라면 그들의 정치는 얼마나 삭막할까? 그리고 백성은 또 얼마나 끔찍한 삶을 살까?

■풍자를 막는 건 좁쌀 썰어 먹을 짓

	명 왕조를 세운 주원장.- '민족 영웅' '평민 황제'라는 칭송을 받지만 실제로는 직언하는 수많은 신하를 서슴지 않고 죽였다. 아비의 그릇됨을 지적하는 맏아들 주표에게 의자를 집어던졌다는 일화는 그의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역사에서 지식인을 탄압하는 옥사에 '문자옥(文字獄)'이 있다. 중국 황제의 통치술 가운데 하나인데, 고대부터 보이기는 하지만 명(明) 왕조 때부터 두드러졌고 청대(淸代)에 만주족이 한족을 통치하면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문자옥은 거대한 땅덩어리를 통치하면서 온갖 일을 처리해야 하는 황제가 신하의 문장 따위를 꼬투리 삼아 소란을 떨면서 사람들 목을 날린 일인데, 사실 이런 짓은 황제의 마음보가 좁아서 '좁쌀 썰어 먹을 놈'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뿐이다.

명 왕조의 창업자인 주원장(朱元璋)은 '민족 영웅'이면서 '평민 황제'로 일컬어진다. 송 왕조를 멸망시키고 들어서서 한족을 억압한 원(元)에 항거하여 봉기하고 원을 내몰고서 중화를 회복했으므로 '민족 영웅'이며, 어려서부터 거지 노릇에 중노릇까지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간신히 살아남아 이윽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므로 '평민 황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르다. 그에게는 '무뢰배'나 '부랑아'의 본색이 있었으니, 그가 건국공신들을 비롯해 무수한 신하를 죽인 일이 그렇다. 특히 그는 비천한 출신으로 열등감이 있었던지라 문인을 시기하고 의심했다. 그 때문에 관리들이 문서로 자신을 비방한다고 여겨서 처벌했다. 살인을 서슴지 않는데다 좀스럽기까지 한 황제이니 누가 그 앞에서 감히 직언이나 간언을 할까?

주원장이 맏아들 주표(朱標)와 나눈 대화가 있다. 태자 주표가 "폐하께서 사람을 너무 죽여 기를 상하시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라고 아뢰었다. 태조(주원장)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 날, 태조는 가시가 박힌 몽둥이를 땅에 던지더니 태자에게 집어 들게 했다. 태자가 난감해하자 태조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잘 다듬고 갈아서 광을 낸 다음 너에게 주마. 지금 내가 죽인 자들은 모두 천하에 난을 일으킬 자들로 손을 찌르는 가시와 같은 자들이다. 너를 위해 이것들을 제거해주는데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느냐?"

태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위로 요나 순 같은 군주가 있었기에 아래로 요나 순의 백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이에 태조가 성이 나서 앉았던 의자를 집어 태자에게 던졌다. 태자가 달아나자 태조가 그 뒤를 쫓았다.

주원장이라는 인물의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들인 태자의 말, 그것도 이치에 맞는 말을 듣고서도 폭력을 행사한 황제였으니, 신하들 가운데 누가 감히 직언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충고라도 하려면 모가지가 날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실제로 태자 주표는 요절했는데, 사사건건 부친과 충돌한 탓이리라. 한비의 충고를 깊이 새겼더라면 좋았을 것을.

"무릇 논의의 근거가 아무리 바르더라도 군주가 반드시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논리가 아무리 온전하더라도 반드시 써주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대왕께서 이런 이유로 믿지 않으신다면, 작게는 남을 헐뜯는 자로 여겨질 것이고 크게는 죽음을 부르는 재앙이 그 몸에 미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자서는 일을 잘 꾀했으나 오나라에서 죽임을 당했고, 공자는 말을 잘했으나 광(匡) 땅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아슬아슬했으며, 관중은 참으로 똑똑했으나 노나라에서 그를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 명의 대부가 어찌 현명하지 못해서 그러했겠습니까? 세 명의 군주가 밝지 못해서였습니다." ― '난언(難言)'

■'형겁'이 떠오르는 이 시대

한비는 또 '삼수(三守)'에서 "공무를 집행하거나 감옥에 보내는 일, 금지하는 명령이나 형벌에 관한 일을 신하(대통령)가 멋대로 처리하여 군주(국민)를 위협하는 일이 있는데, 이를 형겁이라 한다"고 말했다. 요즘의 돌아가는 꼴이 딱 이 '형겁'의 형세다.

김수영 시인의 시 '누이야 장하고나'(1961)는 "누이야/풍자(諷刺)가 아니면 해탈(解脫)이다/너는 이 말의 뜻을 아느냐"로 시작된다. 이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를 김지하 시인은 독재 정권의 폭압과 시대의 모순, 부조리, 부정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풍자냐, 자살이냐"라고 했다. 이제 이 시인은 무어라 말할까? 내가 대신하리라.

제국이여, 풍자가 아니면 몰락이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