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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평론가 강헌이 한국 음악사상 최고의 앨범 재킷으로 꼽은 한대수 2집 '고무신'과 재즈 전도사로 불린 루이 암스트롱, 1970년대 한국 청년문화를 폭발시킨 김민기(사진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
- 팔망미인 평론가의 거침없는
- 음악계 숨겨진 이야기 가득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선택을 기다리는 책들 사이에서 강헌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음악평론가라는 공식 직함에 어울리게 그는 재즈에서 클래식, 국악, 대중음악까지 모르는 것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한때 문학청년이었으며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또 클럽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와인에 조예가 깊고 방송을 진행할 만큼 음식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연구소를 열었을 만큼 명리학에 심취해 있다.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매체에 글을 쓰고 방송에 출연했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이 혼자 새겨진 책을 펴낸 적은 없다. 그래서 강헌이라는 이름이 표지에 버티고 있는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란 책이 순식간에 눈에 들어왔다.
강헌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다. 국내 음악계에 혁명을 몰고 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 문화적 파괴력을 분석하면서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로 떠올랐다. 워낙 인기가 좋아 당시 국내 음악 평론은 강헌, 외국 팝 음악 평론은 임진모라는 말이 돌 지경이었다.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그가 세상에 낸 첫 번째 책 역시 평범하지 않다. 음악사를 짚으면서 기존 선입견들에 대한 전복과 반전의 사유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목만큼 아주 도발적이거나 무겁지는 않다. 강의를 바탕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강헌은 앞에 청중을 앉혀놓고 하나하나 설명하듯이 글을 써 내려가 읽기가 편하다. 또 전문적인 용어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자세하게 해설을 달아놓아 막힘이 없다. 무엇보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계의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한 번 책을 들면 놓기가 쉽지 않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첫 장 '마이너리티의 예술 선언-재즈 그리고 로큰롤 혁명'부터 강헌은 거침없이 자신의 화법을 풀어놓는다.
"재즈는 가장 가난한 민중의 일상에서 탄생해 주류의 문화가 된 극히 보기 드문 첫 번째 예이다."
강헌이 첫 페이지에서 제시한 이 말은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젊은 시절 가명으로 재즈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남긴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흐름을 한마디로 압축해 놓았다고 보면 된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이광수가 한국 최초 근대 장편소설을 출간했으며 박정희가 태어난 바로 1917년, 미국 남부 항구도시인 뉴올리언스에서 한 장의 음반이 발표된다. 첫 번째 재즈 음반이었다. 이때부터 불과 30여 년 만에 재즈는 세계 음악계의 주류로 자리 잡는다.
여기서 지켜볼 부분은 누가 재즈를 만들었느냐는 점이다. 처음 재즈 음반을 낸 주인공이 백인이었고 재즈 밴드 구성원 다수가 백인이었으며 백인이 만든 악기로 연주하기 때문에 재즈는 백인의 음악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에 대해 강헌은 미국의 흑인, 즉 아프리칸 아메리칸에 의해 재즈가 탄생했다고 강조한다. 재즈가 '필드 홀러'(field-holler), 직역할 경우 '들판에서의 절규'인 흑인들의 정서를 담은 음악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강헌은 재즈에 이어 10대들에 의해 로큰롤이 주류 문화가 되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마이너리티들의 정치적 혁명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해왔지만, 재즈와 로큰롤을 통해 문화 영역에서는 기성세대들의 지배를 깨뜨렸다"고 문화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2장에서는 무대를 1960년대 말 국내로 옮겨 청년문화를 다룬다. 극도로 피폐해진 정치적 상황에서 한대수와 김민기, 트윈폴리오, 양희은으로 대표되는 통기타 혁명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담아 생생하게 보여준다.
"언제 또 책을 내지?"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