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공포가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 체온계로 열을 측정해 일정 온도 이하여야 입장할 수 있는 식당, 마스크 품절 사태, 출처를 알 수 없는 메르스 예방 문자와 메일이 주기적으로 도착한다. 언론매체에서는 백신 개발 내용보다는 확진자의 이동 경로나 감염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혈안이다. 그 가운데 정체 모를 소문들이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SNS를 통해 전염병보다 더 빨리 전이된다. 이때 정부는 소문(공포에서 비롯된 소문 또는 진실일지도 모를 소문)을 전할 시 엄벌에 처한다고 경고하며, 보건당국의 지침(낙타고기 먹지 않기)을 따르고, 개인위생(손 씻기)에 힘써야 함을 강조한다. 국민은 정부와 언론 그리고 소문 사이에서 극심한 공포와 불안감을 느낀다.

메르스 관련 소문들을 들으며 1923년 9월 1일, 강도 7·9의 지진이 관동지역을 뒤흔들었던 '관동대지진'이 떠올랐다. 지진으로 도쿄 부근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지진과 화재의 공포가 사라지기도 전에 일본인은 '조선인이 방화했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 등의 소문을 듣게 된다. 소문의 출처는 다름 아닌 일본 관헌이었다. 그들은 조선인에 대한 적개심(1919년 3·1운동 때 조선인이 보여준 저항)과 일본인이 지닌 공포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인을 이용한 것이다. 자경단은 '주고엔 고주고센(15엔50전)'을 발음하지 못하는 조선인들을 산채로 불에 태우거나, 일본도로 목을 베는 등 무자비한 살인을 감행한다. 이처럼 6000여 명의 조선인 죽음 이면에 일본 관헌이 주도한 '악성 유언비어'가 있었다.

강덕상의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은 조선인 학살을 자행한 이유가 지진이라는 재앙에 흥분한 일본 민중이 집단 광기의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소동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발생한 재앙에 공포와 불안감을 느낀 민중의 분노가 왕실이나 정부로 향하지 않게 하기 위한 술책에서 비롯되었음을 '증거'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인의 죽음이 현실에서 잊히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건임을 지적한다.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함으로써 재앙의 공포를 타자에게 떠넘긴 일본, 사람들이 전하는 소문이 악성임을 확신하며 메르스라는 공포를 숨기려 한 한국.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방식에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의 착각일까. 소문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의도처럼 보인다. 물론, 개인의 소문 또한 왜곡·조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문이야말로 새로운 환경에 대처할 방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과정이거나, 여론에 수렴되지 못한 국민의 의견일 수 있다. 국가가 정보를 제공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누구든지 본 것을 전달할 언론이 될 수 있다. 이를 인지한다면 소문이야말로 개인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아닌가.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야말로 독재의 방식이 아닐는지. 조선인의 아픈 기억을, 역사적 증거를 통해 기록하고 있는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을 덮으며 내일이 오늘과 다르길 바란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