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군대가 침입해 오자 고려 백성들이 항전해 승리를 거둔 1232년 처인성 전투를 그린 역사기록화이다.

- 자신이 할 일 실천 옮긴 강희제
- 청나라 초기 태평성대 이끌고
- 현재의 거대한 중국 초석 마련

- 몽골 침입 때 최고권력자 최이
- 주어진 책임 등한시 권력 남용
- 최씨정권 종식·고려 항복 초래

- 국민생명 위기 국가적 사태에도
- 전면 나서야할 대통령·장관 등
- 존재감 없으니 이를 어찌할꼬

"무릇 위세는 다스리는 데에 편리하기는 하지만 어지럽히는 데에도 유리하다. 그래서 '주서(周書)'에서도 '범에게 날개를 달아줘서는 안 된다. 날개를 달아주면 마을로 날아 들어 사람을 골라 잡아먹는다'고 했다. 못난 자가 위세를 타게 하는 것은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 포악한 왕들인 걸과 주는 높은 돈대와 깊은 연못을 만들면서 백성들의 힘을 소진하고 포락(炮烙)의 형벌을 만들어 백성들의 생명을 손상시켰다. 이들이 멋대로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남면한 군주의 위세를 날개로 달았기 때문이다. 걸과 주가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았다면 포악한 짓을 단 하나도 저지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이렇게 위세는 범이나 이리와 같은 사나운 마음을 길러서 난폭한 짓을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천하의 큰 우환이다."―한비자 '난세(難勢)'

■무거우나 벗어날 수 없는 제왕 책임

	청나라의 부흥을 이끈 강희제 초상. 출처 중국 위키백과

현재의 거대한 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청(淸)나라가 마지막 왕조가 됨으로써 가능했다. 청은 앞선 명(明) 왕조보다 영토는 두 배 이상 커졌고, 인구도 세 배 이상 늘어나 왕조 말기에는 거의 5억이 넘었다. 이렇게 전례 없는 광활한 영토를 지키고 엄청난 인구를 부양하면서 거의 300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효율적인 행정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데, 이 일을 왕조 초기에 강희제(康熙帝·1661∼1722 재위)라는 걸출한 제왕이 맡아서 했다.

불과 여덟 살 나이에 제위에 오른 강희제는 열네 살에 비로소 직접 정치를 맡았는데, 정치를 맡자마자 '오배의 난'과 '삼번의 난' 등 내란을 평정하면서 실권을 장악했다. 대만을 복속시키고 티베트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했고, 황하와 장강의 치수에 성공해 농사에 차질이 없도록 했으며, '강희자전'과 '고금도서집성' 등 대규모 편찬사업을 벌여 문화 방면에서도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긴 재위 기간 동안 내정과 외교, 경제와 문화 각 방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우며 태평성세를 이룩한 덕분에 그를 '천고일제(千古一帝·천년에 한 번 나올 제왕)'라고도 일컫는다. 그런데 강희제는 결코 천재가 아니고 그저 자신의 책무를 잘 알고 근면하게 일한 제왕이었을 뿐이다.

강희제는 1717년 12월 23일 건청궁(乾淸宮)의 동난각(東暖閣)에 여러 황자(皇子), 만주족과 한족의 대학사, 학사, 구경(九卿) 등을 불러 모아 상유(上諭)를 반포했는데, 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제왕 가운데 혹 수명이 길지 못하였던 자들에 대해 사론(史論)에서 대개 너무나 방탕하고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서생(書生)들이 참으로 순진하고 훌륭한 군주에 대해서라도 흠을 들추어내려고 비평하기를 즐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짐이 옛날의 제왕들을 위하여 변명하자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너무 번거로우므로 힘들고 고달픈 바를 감당하지 못해서 일찍 죽은 것이다. 제갈량(諸葛亮)은 '죽을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 바쳐 나랏일을 돌본다'고 하였는데, 남의 신하된 자로서 이렇게 행한 자는 오직 제갈량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제왕들의 책임은 너무 무겁고 벗어날 수도 없다. 이를 어찌 신하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신하들은 벼슬살이를 할 만하면 벼슬을 살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둔다. 늙으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손들을 돌보면서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군주들은 평생토록 부지런히 수고하고 쉴 수가 없다."

그런데 중국의 수많은 역대 제왕들 가운데 이렇게 제왕의 책무가 막중함을 잘 알고 재위 기간 내내 한결같이 통치한 자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제왕은 자신의 책무를 망각한 채 권세를 누리기만 하다가 위기가 도래하면 도리어 모든 책임을 신하들에게 떠넘기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백성이 어리석다고 꾸짖는다.

■권력이 무책임한 자에게 주어지면

"군주 자신은 스스로 요임금처럼 되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신하들에게 오자서 같은 충신이 되라고 꾸짖는다면, 이는 상(商)나라 사람들이 모두 비간(比干)과 같은 충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모든 백성이 비간과 같다면, 윗사람은 나라를 잃지 않고 아랫사람들은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미리 잡도리하지 않아 제나라를 빼앗은 전상(田常) 같은 자가 나타났음에도 모두 비간 같은 충신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그 나라는 잠시도 안정될 수가 없다." ― '안위(安危)'

1231년 8월, 몽골 군사들이 대거 침입해 예성강에 이르자 개성은 온통 공포에 휩싸였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최이(崔怡·?∼1249)는 자신이 거느리던 가병(家兵)을 이끌고 맞섰으나 힘에 부쳤다. 결국 그는 몽골의 침입에 맞서려면 강화도로 천도해야 한다고 여겨 대신들을 자기 집에 모아서 토의했다. 그리고 결심하지 못하고 있던 고종(高宗·1213∼1259 재위)을 압박하여 천도를 결정하고, 강화도에 대궐을 새로 짓고 천도했다. 과연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서 천도하려 했을까?

강화도에서 최이는 자택을 신축하면서 군사를 부려 개성의 재목을 수송했고 또 소나무와 잣나무를 잔뜩 가져와 자신의 후원에 옮겨 심었다. 이렇게 전쟁에서 부려야 할 군사를 사사로운 일에 썼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병사를 전선으로 내보내지 않고 자신의 집을 경비하는 데에 썼다. 몽골의 침입으로 온 나라가 황폐해지고 백성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최이는 강화도에 들어앉아 권세를 맘껏 누리다가 죽었다.

최이에게는 정실 소생이 없었고, 기생에게서 난 만종(萬宗)과 만전(萬全) 형제가 있었다. 처음에 최이는 이들을 조계산 송광사로 보내 삭발시키고, 만종은 단속사에서, 만전은 쌍봉사에서 주지로 있게 했다. 그러나 둘 다 무뢰한 중들을 모아서는 재산을 축적하며 백성에게 횡포를 저질렀다. 결국 최이는 만전을 불러들여서는 이름을 항(沆)으로 고치고 정치 수업을 받게 했다.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한 것이다.

최이가 죽자 최항은 아비의 장례를 치른 지 이틀 만에 상복을 벗고 아비의 첩들을 간음했다. 본래 무뢰하기 짝이 없었던 자였는데, 이제 그에게는 최고의 권력이 주어졌다. 이른바 사나운 이리나 범 같은 자가 날개를 단 셈이었으니, 당연히 하지 못할 짓이 없었다. 그는 실제로 아비보다 더한 공포 정치를 펴다가 8년 만에 죽었다.

최항도 본처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고, 중노릇할 때 간통한 여종이 낳은 최의(崔誼)라는 아들이 있었다. 최항이 죽자, 왕은 즉시 최의에게 차장군(借將軍) 벼슬을 주고 교정별감(敎定別監·관리의 임면 및 감찰 업무를 맡아보던 최고 권력 기관인 교정도감의 으뜸 벼슬)으로 임명했으며, 조정 백관이 모두 그의 집으로 가서 축하해주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군주가 앞장서서 제 권세를 넘겨준 꼴이고, 백관들이 뒤에서 받쳐준 셈이니 말이다.

본래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품이었던 최의 또한 권력을 물려받자 교활한 무리와 어울리며 횡포를 저질렀다. 결국 인심을 잃은 그는 야별초군의 칼날에 목이 날아갔다. 그의 죽음과 함께 최씨 정권도 4대 62년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고려는 몽골에 항복했다.

■위기에는 침묵과 칩거가 능사인 자

몽골의 침입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 최이가 선택한 강화도 천도는 결국 정권 유지를 위한 칩거나 다름없었다. 임금과 문신들은 목숨이 아까워 침묵할 뿐이었다. 권력자들의 침묵과 칩거로 말미암아 온 나라와 백성은 몽골 군사들에게 유린되었다. 몽골의 칩입 때 권력자들이 보여준 행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의 생명이 걸린 일이나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적극 나서서 일해야 할 대통령과 장관들, 정치가들이 얼마나 쉽사리 입을 닫고 자취를 감추던가. 마치 저 옛날의 정현(鄭縣) 사람처럼 말이다.

"정현 사람 가운데 굴공(屈公)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적이 몰려온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 두려워서 기절했다가 적이 물러갔다고 하면 두려움에서 벗어나 곧 깨어났다." ― '외저설 좌상'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