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에서 만난 정태화 시인이 상림 공원에서 두 번째 시집 '내 사랑 물먹는 하마'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시인의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삶 속의 시와 시 속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 '시인을 만나러 갔다'를 부정기로 싣습니다. 시인이 공들여 언어를 재배해 시를 짓는 현장에서 시와 시인을 만나고 느끼는 자리입니다.


- 북적거림과 조용함 교차하는
- 천년 상림에서 만난 그
- 20년만에 두 번째 시집 내
- "시인 아닌 시가 주장하게 해야"

"상림(上林)으로 갑시다."

날씨가 화창했다. 지난 13일,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린 기자를 정태화(57) 시인은 곧장 상림으로 데려갔다.

상림 바로 곁에 함양문화예술회관, 함양박물관, 함양농산물상설판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상림공원 입구에 커다란 엔제리너스 커피점이 있고, 이디야 커피 전문점이 개점하려고 공사하고 있었다. "상림 입구에도 커피 전문점이 생겼네…." 보물 같은 숲 함양 상림은 1100여 년 전인 신라 시대 고운 최치원(857~?) 선생이 조성했다는 오랜 유서로 유명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꽤 현대적인 환경과 모습을 갖췄다.

산책 나온 주민과 대형 버스 타고 온 외지 관광객이 스스럼없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얼마 전 바로 앞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내 시집 '내 사랑 물먹는 하마'(시산맥사) 출판기념회를 했어요. 손님이 꽤 많이 와주셨죠. 함양에 문학 활동하는 분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런데 문화예술회관이 북적북적했죠." 그날 출판기념회에는 손님이 120명 정도 왔다 한다. 꽤 큰 행사였다.

오래된 느낌과 현대적인 감각이 동시에 있고, 북적거림과 조용한 사색이 교차하는 상림은 정태화 시인의 삶과 시와 닮은 듯했다.

정 시인은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는 태어나서 함양을 떠난 기간이 두 달이 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계간 '시와 시인' 신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때 박재삼 시인께서 심사했습니다. 이듬해 곧장 첫 시집을 내려고 원고를 준비해서 서울 박재삼 시인을 찾아갔죠. 서문을 좀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30대 신인 정 시인은 그때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한다. "굉장히 냉정하셨어요. '당신의 시와 인간을 다 알아야 시집의 서문을 쓸 수 있다. 나는 당신의 시를 몇 편 봤을 뿐이다. 나는 쓸 수 없다'고 하셨죠." 문단이란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느낌을 함양 청년 정태화는 선명하게 받는다.

그때 경험을 밑천으로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타임캡슐에 저장한 나쁜 이야기 하나'라는 다소 충격적인 시가 당선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시작 활동에 들어간다.

지난 4월 펴낸 두 번째 시집 '내 사랑 물먹는 하마'는 그가 20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면서 시인 정태화의 축적과 발효와 변화와 오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20년 전엔 서정적이고 개인적인 시였어요. 지금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것에 눈길이 갑니다. 실존의 문제, 아픔, 인간 자체 같은 것."

그런데 정 시인은 이런 작업을 독특하게 한다. 먼저 짚을 건 그가 시를 다듬고 다듬는 '느린 시인'이란 점. "이번 시집은 전면적 퇴고 20번, 부분적 퇴고는 30번 넘게 했지요." 대도시와는 또 다른 함양의 호흡이 느껴졌다. 그리고 정 시인은 시 속에 구체적인 사물이나 이야기가 등장해 시를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그의 시는 깊은 시상일지라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개된다. 재미가 있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아파트를 고사목으로 표현하거나 쓰러져 가는 초가집을 할머니로 보는 식이라 할 수 있는데요. 시 속에 사물을 잘 끌어들이면 그 사물이 시를 책임집니다. 사물은 굉장히 힘이 셉니다. 바위든 바람이든 물이든. 그들에게 짐을 지우면 알아서 지고 갑니다. 시인이 직접 주장하는 시를 많이 봅니다. 시인이 아니라 시가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마네킹이 웃고 있다. 무작정 내가 좋아서 / 나를 반겨서 웃는 웃음 /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웃음을 두고, // 머리가 텅 비었으니, 꼴에 꼴값을 하고 있군, / 그런 표정의 사내가 피식, 하고 웃는다 // …저도 걀걀 글글 웃고 있는 마네킹 옆에 마네킹 / 그 옆자리 마네킹이 걀걀 글글 웃고 있다…'('거리에서' 일부)

그의 시는 확실히 익숙한 듯하면서 동시에 그 익숙함을 파괴하고, 앞서가는 전위성이 있으면서도 귀를 쫑긋하게 하는 이야기다움이 있다. 1000년 넘은 함양 상림 앞에 있는 현대식 커피숍에서 그의 시를 곱씹어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