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랫사람 말 가려내야 함에도
- 본인부터 두서없는 말로 놀림감

- 대통령 헌소리, 밑에선 흰소리
- 국민들 "질병보다 더 무섭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논변은 어찌하여 생기는가?"

내가 대답했다.

"군주가 명철하지 못해서 생긴다."

"군주가 명철하지 못해서 논변이 생기는 까닭은 무엇인가?"

"현명한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군주의 명령이 말 가운데서 가장 귀하고 법이 일 가운데서 가장 알맞다. 말에서는 이쪽저쪽 다 귀한 게 없고, 법에서는 둘 다 알맞다는 게 없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법령을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금한다. 만약 법령이 없는데도 속임수에 대처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이익을 창출하고 앞일을 미리 헤아리는 신하가 있다면, 군주는 반드시 그 말을 잘 가리고 그 실적을 따져봐야 한다. 말이 타당하면 큰 상을 내리고, 타당하지 않으면 무거운 벌을 내린다.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자는 죄를 두려워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시비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명한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논변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이다." ― 한비자 중 '문변(問辯)'

■난무하는 헌소리와 흰소리

요즘 '대통령의 화법 또는 발언'을 문제 삼고 풍자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는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책임진 최고 통치권자이기 때문이리라.

5월 12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대통령이 중요한 용건을 수첩에 적어 두었다가 챙겨서 읽는 것은 그래도 신중하게 말하려는 것이라 여기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말을 꺼내면 두서가 없이 흘러가는 것은 신중함의 문제를 떠난, 심각한 문제다.

다음은 지난해 5월 16일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하면서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그 트라우마나 이런 여러 가지는 그런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이렇게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그런 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그렇게 위로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다."

이 말을 들은 유가족들은 전혀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을 '헌소리'라 한다. 이런 헌소리를 평범한 사람이라도 한다면 비웃음을 사기에 족한데, 하물며 한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가 국정과 관련해서 또는 중요한 자리에서 해댄다면 참으로 심각하다 못해 여간 걱정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한 지 20여 일 뒤인 지난 5일 "만약에 지자체나 관련 기관이 독자적으로 이것(메르스)을 해결하려고 할 경우에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에 긴밀한 소통, 그리고 협업이 있어야 되겠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형병원 의사인 35번째 확진 환자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1500여 명 시민이 메르스 위험에 노출됐다고 밝히면서 정부의 방역조치를 비판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여겨진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소통이나 협업은커녕 대책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가 비판을 받자 부랴부랴 뒤늦게 반박했던 것이다. 단순히 뒷북친 것이 아니라 뒷북도 찢어진 북을 친 꼴이다.

지난 7일 정부 발표는 화룡점정(?)이었다.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고 경유한 병원명을 공개하며 "확진환자가 나온 병원명단 등의 정보를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공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말로 끝맺었어야 하는데, 덧붙여 "박 대통령께서도 지난 6월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환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투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셨고,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신고 폭증에 대비한 신고체계 구축 및 격리병상 추가 확보 등 사전준비를 마치고 공개하게 되었다"고 했다. 참으로 옹색하고 비루한 말이다. 이 모두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미 강조했고 또 실행하고 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명에서 시작된다

공자

"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거드럭거리며 허풍을 떠는 말"을 '흰소리'라 한다. 대통령이 헌소리를 하니, 국무총리 대행은 흰소리를 한다. 국무총리 대행의 흰소리도 결국 대통령의 의중을 따른 것이니, 대통령의 말이나 다름없다. 말에 두서가 없고 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 정치는 참으로 종잡을 수 없게 된다.

자로가 말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스승을 맞이하여 정치를 한다면, 스승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正名) 할 것이다."

"이렇군요, 스승께서 에두르시는 게! 어찌 꼭 이름을 바르게 하려 하십니까?"

"메떨어지구나, 유(由)야! 군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도히 제쳐놓는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매끈하지 못하고, 말이 매끈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의와 음악이 내돋지 않고, 예의와 음악이 내돋지 않으면 형벌이 들어맞지 않고, 형벌이 들어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다." ― '논어-자로(子路)'

한비는 "군주의 명령이 말 가운데서 가장 귀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군주의 명령에 따라 국가 운명과 백성의 삶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군주가 말을 어떻게 하고 신하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한비였으므로 공자가 정치를 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바르게 할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기꺼이 동의했으리라.

"군주가 써야 할 유일한 길은 명분을 으뜸으로 세우는 원칙이다. 명분이 바로 서면 사물이 안정되고, 명분이 치우치면 사물이 흐트러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하나의 원칙을 단단하게 쥐고 고요히 있으면서 신하들이 스스로 명분을 아뢰어서 일이 저절로 결정되고 처리되도록 한다." ― '양각'

여기서 '명분을 으뜸으로 세우는 원칙'이 곧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에 해당한다. 이렇게 명분이나 정명을 중시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생각에서 말이 나오고, 말에서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말로써 생각의 깊고 얕음을 짐작할 수 있고, 그 말로써 어떻게 행동할지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이루어질지 헤아릴 수 있다. 이를 우리는 현재의 정치에서 이미 목도하고 있다.

■어떤 질병보다 무서운 소리들

군주가 명철하지 못하면 그저 논변을 일으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자신이 말의 중요성을 알지 못할 뿐더러 말을 조리 있고 알맞게 하지 못한다. 물론 말을 잘한다고 반드시 명철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명철한 사람은 반드시 말을 조리 있게 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의 말에는 조리가 없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한비는 "군주는 반드시 그 말을 잘 가리고 그 실적을 따져봐야 한다"고 했는데, 군주 자신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남의 말을 가리고 따질 깜냥조차 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길을 잃은 자라도 길을 아는 자에게 기꺼이 듣고서 익히고 묻고서 알게 되면 헤매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이 공을 이루고자 하면서도 오히려 실패하는 까닭은 도리를 알지 못하면서도 물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귀담아듣고서 해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 '해로(解老)'

부디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되새기며 자신을 돌아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국민들은 헌소리나 흰소리를 들을 것이고 뒷북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니 말이다. 정치에 관한 한 이 소리들은 어떤 질병보다 무섭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