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감사원이 '국가 연구개발(R&D) 참여 연구원 관리실태 감사결과 보고서'를 냈고, 그 내용이 상세하게 보도됐다.

이 감사는 국가 연구개발에 참여한 국립대 교수를 대상으로 했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교육부 및 해당 대학에 파면 4명, 해임 2명, 정직 5명 등 모두 19명에 대해 징계와 문책을 요구했다(본지 지난달 27일 자 2면 보도). 부산 경남에서는 부산대 부경대 경상대 등의 교수가 여기 포함됐다.

감사원이 밝혀낸 국립대 해당 교수들의 잘못은 거의 돈(연구비)과 관련됐다. 국가가 국민 삶의 질을 높여보려고, 우리 학문과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보려고, 국민 세금을 투입해 시행하는 것이 국가 연구개발일 터이다.

그런데 어떤 국립대 교수는 군 복무 중인 아들을 연구원으로 등록했다. 아들은 군대에 있으므로 이 연구에 아무런 이바지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가짜 연구원인 아들에게 나라(국민)가 마련한 인건비가 지급되도록 해당 교수는 조처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군대에 가 있는 졸업생을 참여연구원으로 허위등록해 인건비를 부당 지급한 사례, 연구에 참여하지 않는 대학원생이나 교사, 직장인의 명의를 끌어와서는 마치 연구하는 것처럼 해놓고 인건비를 받은 사례…. 파면이면 공무원은 연금도 못 받게 되는 초고강도 처벌인데, 감사원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학계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이런 일을 접할 때마다, 미움이나 비난의 감정을 넘어 크나큰 박탈감과 절망감 같은 게 밀려온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일까. 미래세대의 '미래'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학문의 기성세대와 학문의 미래세대 사이에서도 이는 같다. 문학 인문학 학술 쪽 사람을 현장에게 자주 만나게 되는 문화부 기자로서 과거 학술계의 풍토나 대학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해 듣곤 한다.

정성스레 학술논문(또는 심지어 학위논문)을 써놓았더니, 지배적인 지위에 있던 교수가 그걸 달라고 해서 자기 이름을 얹거나 아예 자기 명의로 발표해버렸다는 이야기. 제자나 후진의 연구를 가로챈 소문. 연구비와 관련한 불투명한 일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높은 꿈을 갖고 학문 세계에 들어갔다가 이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은 대부분 내면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다시 일어서지 못한 이도 있을 것이다. 누구도 이런 짓을 할 권리는 없다.

감사원의 이번 감사 결과 또한 단순히 연구비의 부당한 사용을 확인한 데 그치지 않는다. 많은 부산 젊은이가 왜 부산을 떠나고 있는가? 차·포 떼고 핵심만 말하면, 자기 미래를 이 도시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떠나지 않고 이 도시에서 나름대로 길과 희망을 찾으려던 학문후속세대에게 국가 연구개발 같은 사업이 주는 연구비나 지원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근데 그걸 빼돌려? 이들이 빼돌린 건 이 도시의 미래다.

철학자 김영민이 표절한 학자를 놓고 했던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표절한 학자는…단번에 퇴출되어야 하며 영원히 돌아올 수 없어야 한다'. 학문미래세대의 미래를 뺏는 이들에게는 어떤 조처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