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살 초등생이 지었다는
- 끔찍한 내용의 동시 논란
- 사교육 열풍에 매달린 부모들 과욕이 근본 원인

- 총명했던 사도세자를
-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도
- 사랑이 결핍된 조기교육
- 아버지 영조 과한 기대감 탓

- 맹목적인 교육열은 때론 무관심보다 위험
- 부국강병의 희망도 올바른 아동교육이 출발점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다.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이 시가 초등학생의 작품임을 알게 된다면, 끔찍함에 충격이 더해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를 실은 동시집 '솔로 강아지'가 출간되자 곳곳에서 비난과 탄식이 일었다. 끝내 열혈 학부모들이 출판사에 몰려가 시집을 없애라고 항의했고, 마침내 전량 회수되어 폐기되었다. 자, 그런데 왜 폐기된 동시집에 실린 시를 가지고 뒤늦게 논란하는가? 우리 교육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잔혹 행위

저 끔찍한 내용의 시를 두고 '잔혹 동시'라 부르고 있다. 누가 붙인 말인지는 모르지만, 묘하게 진실을 드러내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동시를 지은 아이는 열 살이다. 왜 어린아이가 이런 시를 지었을까? 도대체 이 시로써 무얼 말하려 했을까? 이 시에 담긴 참뜻은 무엇이며, 아이들의 어떤 마음을 담아내려 했을까? 어른들 특히 학부모들은 아이와 아이의 부모를 비난하기 전에, 왜 아이가 이런 시를 짓게 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반성하는 학부모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반성할 줄 모르는 학부모, 바로 이들이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에게 잔혹한 짓을 계속하는 주범이다.

'강남엄마'를 아는가?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강남엄마 따라잡기'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한국 교육의 현주소, 특히 사교육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거기 나오는 강남엄마는 결코 허구가 아닌 실재였고 여전히 실재한다. 강남엄마는 아이를 이른바 SKY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과 선행학습을 시키며 갖가지 스펙을 쌓게 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참으로 열성적이고 발 빠른 학부모를 가리킨다.

강남엄마의 힘은 '정보력'이라고 하며, 그 정보력이 바로 아이의 성적과 미래를 결정한다고 한다. 늦은 밤,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가보라. 초등학생들이 밤 11시가 되어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풍경이 날마다 연출된다. 강남엄마들의 열성이 빚어낸 현상이다. 귀가했다고 일과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시 공부를 더하거나 숙제도 해야 한다. 그러니 잠자리에 드는 시각도 꽤 늦어, 대체로 새벽 한 시나 두 시쯤이다.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닦달하는 이들이 강남엄마인데, 저 시 속의 엄마와 겹치지 않는가?

이런 답답한 세태를 두고 저 한비도 이렇게 일갈했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자식에게 자애롭고, 생명을 중시하는 자는 자신의 몸에 자애롭고, 공적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자신의 일에 자애롭다. 자애로운 어미는 어린 자식이 행복해지도록 힘쓰는데, 어린 자식이 행복해지도록 힘쓸 때면 재앙을 제거하는 일에 힘쓰고, 재앙을 제거하는 일에 힘쓰면 사려가 깊어지고, 사려가 깊어지면 사리를 터득하고, 사리를 터득하면 반드시 공을 이루고, 반드시 공을 이루면 행동할 때 망설이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 것을 '용기'라 한다." ―'한비자' 중 해로(解老)

■애정이 결핍된 조기 교육의 비극

"마음에 화가 일어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같은 짐승을 죽여야 마음이 풀어집니다."

"어째서 그리하느냐?"

"마음이 상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상했느냐?"

"사랑하지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니 무서워서 화가 되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중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중록'은 조선시대 가장 비극적인 사건, 즉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일에 대해 혜경궁 홍씨가 자초지종을 적은 글이다. 위의 대목은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던 사도세자가 사람들을 죽인 일을 알게 된 영조가 당장에 그를 불러서 꾸중하고 나눈 대화다. 그런데 이렇게 슬프고 안타까운 대화가 또 있을까?(있다. 지금 이 땅의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대화가 대체로 이 지경이다.) 어찌하여 아비와 자식이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까?

사도세자는 영조가 서른여덟 살 때 태어났다. 그보다 7년 전에 큰아들을 잃은 영조가 마흔이 다 되어서 다시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기뻤을까? 기쁨이 컸던 만큼 영조의 기대도 아주 컸다. 사도세자는 태어나자마자 원자에 책봉되었고, 장차 왕이 될 사람이었으므로 조기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생모 품에서 떼어, 동궁으로 옮겨서 궁녀들 틈바구니에서 자라고 배우게 했다. 이것이 비극의 시초였음은 불문가지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데다 영조는 또 무서운 아비였다. 사도세자는 영조를 만나면 쭈뼛쭈뼛했다. 영조는 그런 태도가 못마땅해 꾸중했고, 그러면 세자는 더욱 무서워하며 움츠러들었다. 결국 세자는 열 살이 넘으면서 정신질환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전혀 나아질 기미 없이 점점 악화되었다. 영조는 영조대로 불만이었던지 "차라리 미쳐서 발광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까지 말했다.('영조실록') 어떻게 아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까? 영조의 욕심과 기대, 그리고 실망이 빚어낸 결과였다. 무엇보다 사랑이 부재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영조는 몰랐다. 욕심이 앞서니 사랑을 버리고 사리에서 벗어난 아비 노릇을 한 것임을.

"사람이 욕심을 가지면 분별이 흐트러지고, 분별이 흐트러지면 욕심이 심해진다. 욕심이 심해지면 간사한 마음이 일어나고, 간사한 마음이 일어나면 사리가 끊어진다. 사리가 끊어지면, 재앙과 환난이 생긴다. 이로써 보면, 재앙과 환난은 간사한 마음에서 생기고, 간사한 마음은 욕심에서 이끌려 나온다. 욕심을 부리게 하는 것들은 나아가서는 선량한 백성을 간사하게 만들고, 물러나서는 착한 사람이 재앙을 입도록 만든다." ― '해로'

■아이가 건강해야 국가도 부강

한국은 작은 나라다. 천연자원도 별로 없다. 오로지 인재만이 자원이 되고, 미래의 자산이 된다. 그래서 국가나 개인이나 교육에 쏟는 열의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하다. 이런 교육열은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나 다름없을 정도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몇 차례나 칭송할 정도였으니. 우리나라의 이런 교육열은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이요 유산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맹목적인 교육열은 때로 싸늘한 무관심보다 위험할 수 있다. 저 동시에 잘 드러나 있지 않은가?

"어린아이가 성장한 뒤에 성공할지는 그 능력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바르지 않아 아이의 비뚤어진 습관을 그대로 내버려두거나 법도에 맞지 않게 지도하여 아이의 자라나는 원기를 손상시킨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 '인정(仁政)' 교인문(敎人門) 1, '동자교(童子敎)'

조선 후기 학자 최한기(崔漢綺·1803∼1877)가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쓴 글의 일부인데, 이 글은 '인정(仁政)'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인정'은 위기의 조선이 미래를 위해, 부국강병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와 교육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쓴 책이다. 교육은 당연히 아동 교육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일생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 아동을 바르게 가르칠 때, 거기에 부국강병의 꿈이 영근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부국강병에서 멀어지는 교육 정책을 펴고 있지 않은가? 부국강병은커녕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잔혹 동시를 낳고는 감추기에 급급한 교육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매주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