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이 사태가 가져올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다. 싸움이 옹색하고 한심하다. 진흙탕에서 싸우더라도 쟁점은 있어야 하고, 최소한의 신사도는 발휘되어야 하거늘 지금은 이도저도 아니다. 정작 쟁점은 희석시킨 채 소모적 감정싸움에 매달려 있다.
희석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영화 '다이빙벨' 상영이 정말 문제였나 하는 것과 공공축제(영화제)에 대한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의 훼손 여부다. 바꿔말하면, 공공예술의 표현의 자유, 민간의 자율성과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된다. '팔 길이의 원칙'은 영국의 예술행정가 존 피크가 제기한 이론으로, 흔히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된다.
지난 가을 영화제 때 BIFF 측은 부산시의 반대를 무시하고 세월호 참사를 공격적으로 다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 이후 BIFF집행위원회에 대한 감사원과 부산시의 감사,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종용, 국비 반토막 삭감은 전체가 하나의 시퀀스를 형성한다. 누가 봐도 BIFF 길들이기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시는 극구 '다이빙벨'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칸영화제에 참석 중인 김세훈 영진위 위원장은 "국비 삭감은 정치적 이유가 아닌 형평성 때문에 결정한 것인데, BIFF 문제를 정치 프레임에 가둬 보는 게 문제"라고 했다. 부산시의 입장도 오십보백보다.
달을 가리키며 손끝을 보게 하는 어법인데, 이는 본질을 흐리게 하고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 차라리 '다이빙벨' 상영이 문제였고 추후 영화제 상영작에 대해 검열하겠다고 말하라. 영진위는 영화제 상영작에 대해 사전 심의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인 만큼 돌려서 말할 이유도 없다. BIFF 예산 삭감과 검열 시도는 별개의 얘기 같지만, 영화제 자율성을 제약하는 결과로 나타날 게 뻔하다.
BIFF 사태의 와중에 알게 모르게 유지돼 온 '팔 길이 원칙'이 훼손된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영진위는 올해 BIFF에 대한 국비지원을 예년의 반토막인 8억 원으로 결정, '지원을 줄여 간섭하는' 형식을 취했다. 부산시가 방관자세를 취한 건 더욱 이해가 안 된다. 싸우더라도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BIFF의 성장·발전동력이 됐던 '팔 길이 원칙'이 하루 아침에 훼손된 것은 예산 삭감 그 이상의 손실이다.
BIFF는 올해 20주년을 맞는다. 재도약의 동력을 만들어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 BIFF의 현실적 과제다. 부산에 내려온 영진위와 BIFF가 부딪히고, 한 줌 헤게모니를 놓고 아귀다툼하거나 민과 관이 감정적 대립을 격화하는 모습은 누구도 바라는 그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쟁점이 선명한 생산적인 싸움으로 BIFF호의 과제를 풀면서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저런 갈등과 마찰은 성장통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