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중국에서 출간된 '만소당죽장화전'에 실린 구양수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 성완종 호재에도
- 친노니 비노니 편가르기 싸움에
- 재·보선 참패

- 국민 위한 정당 본분 잊어

- "연줄로 맺고 군주 등져 사욕만 좇는
- 소인의 붕당이 쇠망 불러"

- 도의·올바름과 멀어진 정당
- 수없이 사라져

이 세 마리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 곁을 지나가던 이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다투고 있는 건가?"

이 세 마리가 입을 모아 말했다.

"살찌고 넉넉한 곳을 다투고 있다네."

"자네들은 섣달이 되어 제사를 지낼 때면 돼지가 띠풀에 그을려서 죽게 될 것은 걱정하지 않고 있는데, 어째서 이걸 걱정하지 않는 건가?"

이리하여 서로 돼지의 몸을 물어뜯으며 피를 빨아 먹었다. 돼지가 야위자 사람들은 그 돼지를 죽이지 않았다. ― 한비자 중 설림(說林) 하

■정곽군보다 어리석은 야당

지난달 29일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비록 많은 의석을 두고 여당과 야당이 겨룬 것도 아니고 재·보궐선거 특성상 투표율도 낮아 이 선거의 결과만으로 각 정당이 무얼 잘하고 못했는지에 대해 단정을 짓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성완종 리스트'로 말미암아 여당인 새누리당이 곤욕을 치르고 있던 상황에서 치러졌음에도 제1야당인 새정연이 호재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 채 단 하나의 의석도 차지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그 때문에 지금 새정연 내에서는 내분이 일고 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아닌 전복위화(轉福爲禍)가 된 셈인데,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야당의 패배, 특히 새정연의 패배는 오래도록 야당 안에서 곪고 있던 종기가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 이 세 마리처럼 친노니 반노니 하면서 편을 갈라서는 서로 비난하며 다투는 데 열중하느라, 자신들이 들러붙어 있는 돼지(정당)가 그을려 죽게 될 것도 몰랐거나 간과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이번 선거의 패배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이번 선거 이전에서부터 보여준 행태는 도대체 정당이 왜 존재하는지, 정당이 우선인지 개인의 이익이 우선인지, 나아가 정당정치가 그저 정당을 위한 정치여야 하는지 국민을 위한 정치여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인식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제나라의 정곽군(靖郭君)이 자신의 영지인 설(薛) 땅에 성을 쌓으려고 하자, 많은 빈객들이 간언하며 말렸다.

정곽군이 알자(謁者)에게 명했다.

"빈객들을 들이지 말라!"

제나라 사람인 어떤 빈객이 뵙기를 청하며 말했다.

"세 마디 말만 하게 해주십시오. 세 마디가 넘으면 저를 삶아 죽이십시오."

정곽군은 그 말에 그를 만나보았다. 빈객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바다의 큰 물고기(海大魚)!"

그러고는 종종걸음으로 되돌아나갔다. 정곽군이 말했다.

"그 말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소."

"저는 감히 죽음을 걸고 장난할 수 없습니다."

"부디 나를 위해 말해 주시오."

빈객이 대답했다.

"주군은 큰 물고기에 관해 들어보셨습니까? 그물로도 잡을 수 없고 주살로도 잡을 수 없지만, 일단 물 밖으로 뛰쳐나오면 땅강아지나 개미들도 그 물고기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습니다. 이제 제나라는 주군에게 있어 바다와 같습니다. 주군이 제나라에 오래도록 있을 수 있다면 어찌 설 땅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주군이 제나라를 잃게 되면 비록 설 땅에 하늘에 닿을 만한 성을 쌓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곽군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곧 공사를 멈추게 하고 설 땅에 성을 쌓지 않았다. ― 설림 하

	구양수의 1064년 작 '집고록 발미' 일부. 문학 작품뿐 아니라 글씨도 유명하다. 국제신문DB

■군자의 붕당은 가능한가

	4·29재·보선에서 새누리당에 완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

중국 송대(宋代)에는 '사대부(士大夫)'라는 새로운 문인 지식인층이 등장했다. 사나 대부 모두 원래는 중국 고대부터 존재했던 신분이지만, 송대에 들어서 과거제를 통해 관료가 된 계층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런 사대부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로 범중엄(范仲淹·989∼1052)을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인종(仁宗)에 의해 부재상에 임명되자 관리제를 정비하여 인재를 양성하며 무력을 강화하는 개혁을 제안하여 실시했던 개혁가였다. 당시 워낙 사회가 부패했던 탓에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사대부로서 그의 정신은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잘 표현되어 있다.

"조정에서 고관으로 있을 때는 백성의 삶을 걱정하고, 강호에 떨어져 나와 있을 때는 군주의 일을 걱정한다. 나아가서 벼슬할 때도 걱정하고, 물러나서도 걱정한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 즐거워하는가? 천하 사람들보다 먼저 걱정하고, 천하 사람들보다 나중에 즐거워한다."

범중엄은 인종의 총애를 받았으므로 얼마든지 부귀를 누릴 수도 있었으나,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늘 백성을 생각했다. 그가 부재상이 되기 전 일이다. 곽황후 폐립문제를 놓고 찬성파인 재상 여이간(呂夷簡)과 대립했다가 요주로 좌천되었는데, 이때 여정, 윤수, 구양수 등이 그를 지지하여 차례로 조정에서 물러나며 그들 스스로를 '군자의 붕당'이라 일컬었다. 이 때의 일로 구양수(歐陽脩·1007∼1072)는 '붕당론(朋黨論)'이라는 글을 지었다.

	'공갈사퇴' 발언으로 당내 갈등을 빚은 새정연 주승용·정청래 최고위원이 본회의장에서 나란히 앉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용우 기자

구양수는 "소인은 붕당이 없고 군자만 붕당이 있다" 했다. 소인은 녹봉과 이익을 좋아하고 재화를 탐내는 자이기 때문에 오로지 이익을 함께할 때만 무리를 짓고 붕당을 이루며, 이익을 대하면 앞을 다투다 이익이 다하면 서로 멀어지고 심지어 서로 해쳐서 그들의 형제나 친척이라도 서로 지켜주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소인은 벗이 없으며, 잠시 벗이 되더라도 그것은 거짓이다"라고 했다.

반면에 군자는 그렇지 않아 "지키는 것은 도리와 올바름이고, 행하는 것은 충성과 신의이며, 아끼는 것은 이름과 절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귐은 참되고 이익에 의해 휘둘리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이런 군자의 붕당이 가능할까? 군자인 선비도 드문데, 그들의 붕당이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백성이 붕당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 되었으나, 다행히 지금은 국민이 투표를 통해 정당을 선택하고 의원을 뽑을 수 있는 시대다. 국민이 냉철하게 판단하고 선택하며, 감시와 비판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소인의 붕당'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군주를 잊고 조정 밖에서 연줄을 맺으며 제 패거리만 추천하는 풍토가 되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엷어질 것이다. 연줄을 맺는 자들이 많아지고 패거리가 늘어나 안팎에서 붕당을 이루면, 비록 커다란 잘못을 저질러도 덮어주는 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리하여 참된 신하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죽을 위험에 처하고, 간사한 신하는 아무런 공이 없는데도 편하게 이익을 누린다. 참된 신하가 죄도 없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면 뛰어난 신하는 몸을 숨길 것이고, 간사한 신하가 공도 없이 편하게 이익을 누리게 되면 간사한 신하들이 설쳐댈 것이다. 이것이 쇠망의 근본이다." ― 유도


■강국을 꿈꾸는 정당이어야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는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말에는 도의와 올바름만으로는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그만큼 한국 정치는 도의와 올바름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도의와 올바름을 제쳐두고는 무엇이든 오래할 수 없고 떳떳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이후 한국 현대정치사를 보라. 얼마나 많은 정당이 등장했다가 가뭇없이 사라졌는가? 그 모든 정당이 술수를 부리지 않고 협잡을 일삼지 않아서 사라졌겠는가? 어떤 정치가든, 어떤 정당이든 국민을 우선하지 않는다면, 강국을 꿈꾸지 않고 사욕을 채우려 한다면, 언제든지 버림받거나 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치는 간단하다. 국민과 나라가 없으면, 정치가도 정당도 설 곳이 없다!

"훼라는 뱀이 있다. 몸은 하나인데 입이 두 개 있어 먹을 것을 다투다가 서로 물어뜯어 끝내는 같이 죽고 만다. 신하들이 권력을 다투다가 나라를 망치니, 모두 이 훼와 같은 무리다." ― 설림 하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매주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