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믿고 사는 이에게나 믿지 않는 이에게나 손해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득실의 차이는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이는 16세기 중반의 유신론적 철학자 블레어 파스칼(Pascal, Blaise·1623∼1662)의 '내기 이론'에 나오는 내용으로서 믿음의 선택에 대한 긍정적인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자유를 가진 인간은 보이지 않는 공기나 자기 조상의 존재는 받아들이지만, 하느님의 존재는 자신이 선택해야 하기에 그런지 모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토마스 사도에게 "주님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 29)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가끔 이중적인 모순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많이 모아서 안락하게 살고 싶고 또 하느님을 믿고 섬겨야 하는데 하면서도 진짜 있을까 하는 불신의 마음도 함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성과 속이라는 양쪽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잘 들여다보면 그런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유가 있고 이 자유는 자아완성을 위해서 무한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란 속성이 인간에게 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상태에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소위 진선미라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인 인간은 자유가 있기에 더 진실하고 싶고, 더 선해지고 싶으며, 더 아름답고 싶어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선미의 그 극치가 바로 하느님이라고 현대 가톨릭 신학의 대가 카를 라너(Karl Rahner·1904~1984)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라너에 의하면 인간은 이 자유라는 속성 탓에 누구나 절대적 가치이고 진선미의 극치인 하느님을 추구할 수밖에 없으며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두고 소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언급합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언젠가 서강대학교에서 여러 종교의 학자들이 비교종교학과 관련한 심포지엄을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 가톨릭 신학자가 불교의 유명한 수도승에게 위에서 언급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불교의 수도승이 대답하시길 "그래요. 모두가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지요"라고 했답니다.

같은 종교의 원리를 각자 관점과 입장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이라는 종교 다원화적 토양에서 범법을 하거나 사회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종교라면 누구나 자신의 종교를 신봉할 수 있고 선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반도는 고대에는 무속신앙이,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그런 특정한 종교가 존재하지 않고 마치 종교 백화점처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믿는 종교만이 절대적이기에 타 종교는 모두 무시되어야 하고 없어져야 한다면 이는 너무 배타적인 사고적 발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은 그 절대적인 존재가 하느님임을 선택하고 믿고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륜대 순교자 성지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