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계절에 어울리는 영화 추천을 요청받을 때가 있다. 사람마다 계절에 대한 감각이 다르고, 영화마다 계절의 순환을 담아내는 풍광과 삶과의 연계점이 다르므로 보편적인 목록을 작성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담아 가장 무난한 답변을 내놓는다.

계절을 제목으로 삼아 개인의 삶에서 일어날 만남과 이별을 삶의 흐름 안에 배치한 오즈 야스지로는 '늦봄'(1949)에서 과년한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딸과의 시간을 정리하는 아버지가 등장하고, '가을 햇살'(1960)에서는 홀어머니를 두고 결혼해야 하는 딸과 엄마의 여행을 통해 가족 구성원의 부재를 통감한다. '부초'(1959)에서는 가족의 비밀이 만들어낸 갈등을 잠재우는 소나기가 세차게 퍼붓고, '동경의 황혼'(1957)은 오즈의 영화에서 이례적으로 하얀 눈이 내리며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들의 비극적인 시간을 노출한다.

에릭 로메르는 노년기에 만든 '4계절 이야기' 연작을 통해 인간관계와 연애과정의 사소한 갈등과 다툼, 오해와 이해의 과정을 세심한 손길로 보듬고 있다. 교외의 작은 별장에 심은 꽃나무와 산들바람이 '봄 이야기'(1990)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여름 이야기'(1996)는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낸 젊은이들의 만남과 이별이 짙푸른 바다와 하늘의 청명함을 배경 삼아 드러난다. '가을 이야기'(1998)는 중년 여성들의 삶을 찬찬히 관찰하고, '겨울 이야기'(1992)는 엇갈림으로 인한 이별과 오랜 기다림이 만들어낸 기적을 표현한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앙투안 드와넬' 연작을 통해 고통과 성장, 활기와 침체의 자취를 따르는 한 인물의 초상화를 완성한다. '400대의 구타'(1959)에서 드와넬은 가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이었고, '앙투안과 콜레트'(1962)에서는 첫사랑과 영화, 음악에 빠진 청년으로 성장한다. '훔친 키스'(1968)에서 그는 연인과 성숙한 여인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실재하는 것과 허망한 환영을 경험하고, '부부의 거처'(1970)는 결혼 생활 중에 찾아온 피로감에 시달리지만 아이의 탄생을 목격하는 드와넬이 등장하며, 연작의 마지막 영화인 '사랑의 도피'(1979)에서 그는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트뤼포는 20년에 걸쳐 자신의 페르소나인 장 피에르 레오와 더불어 드와넬이라는 인물을 영화사에 새겨 넣었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자라나고 머뭇거리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순간을 조명한다.

세 감독의 영화는 과정에 놓인 삶을 잠시나마 붙들고 있다. 시간 안에서 자라나거나 멈추는 지점은 단절이나 깨우침으로 이어지고 슬픔과 좌절은 기쁨과 비애로 변할지라도 그들의 영화는 삶의 이치와 순환에 충실하다. 삶의 비밀을 품은 영화를 만난다면 훌쩍 다가왔다가 어느새 사라진 계절에 대한 아쉬움이 상쇄될지 모르겠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