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가명) 시인부터 자기 시를 발표해볼까요?"

인문학 강사로 나선 빈빈문화원 김종희 대표가 이름을 부르자 동수 씨가 "예"하며 벌떡 일어섰다. 지난번 수업시간에 내준 과제는 '그릇'을 소재로 시 한 편 써오기였다.

"제목 그릇! 이 세상에는 많은 그릇이 있다. / 밥그릇, 반찬그릇, 접시. / 그릇은 모든 걸 담는다. / 나를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무엇을 담을까. / 사랑, 좋은 것. / 안 좋은 것을 담을 수도 있다. / 미움 시기 질투. / 이럴 때는 얼른 버려야겠지." 김 대표가 "정말 감동적이네요"라고 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동수 씨는 뿌듯하게 웃음 지었다.

지난 24일 부산 영도구 절영종합사회복지관의 정신장애인 대상 인문학 프로그램 '인문학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현장을 찾았을 때 펼쳐진 모습이다. 정신장애인 15명이 듣는 강좌인데 이날은 12명이 출석했다. 절영복지관 서미라 관장은 "장애 극복을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분들이며 직장 생활은 안되고 작업치료 등은 소화하는 단계다. 자기표현과 대인관계가 무척 어려웠는데 시를 쓰고 난 뒤부터 큰 효과를 본다"고 설명했다.

사회복지 현장에 '문화'를 접목하는 프로그램이 새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공연을 보거나 문화 명소에 다녀오는 수준의 문화복지를 넘어, 전문성을 갖추고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프로그램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효과 역시 좋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와 청소년이 거주하는 부산 금정구 노포동 남광아동복지원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연계하고 자체 재원을 보태 다년간 가야금교실과 모듬북(북울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3명이 예술고에 진학했다. 정서 순화와 예술교육뿐 아니라 진로·진학 지도의 효과까지 거뒀다.

영도구 와치종합사회복지관은 주부 자원봉사자를 위한 난타 교실을 운영한다. 자원봉사가 도시락 배달, 노인 말벗 해드리기, 집수리 등에 그치지 않고 봉사자 자신부터 행복감과 자아실현을 맛보도록 발상을 전환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기쁜우리사회복귀시설은 연극치료 프로그램 '내가 주인공'으로 정신장애인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사회복지와 문화의 이 같은 융합은 어려운 사람을 골라 생계를 지원하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자아를 실현하도록 하고 있다. 와치종합사회복지관 서보경 관장은 "복지서비스가 지역 주민 전체의 삶의 질 향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이다. 이때 문화와 복지의 융합은 더욱 중요해진다. 다만, 단순한 체험이나 관람이 아니라 직접 참여해서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