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부산 금정구 노포동 남광아동복지원에서 청소년들이 가야금 연주를 배우고 있다. 남광복지원은 2006년부터 국악 강좌를 열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단순 의식주 지원 위주서
- 자존감 키우는 복지로 이동

- 국악 배워 예고 간 아이만 셋
- "가야금 연주하는 판사 될래요"

- 정신장애 극복하려 연기 도전
- "적극적 자기표현 등 큰 변화"

"어려운 점이요? 두 손가락으로 현을 쳐야 하는데 잘 맞지 않으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요. 손에 자주 물집이 생겼다가 굳다가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중학생 김정욱(가명) 군은 가야금을 배운 지 1년 남짓 됐다. 정욱이는 부산 금정구 노포동 남광아동복지원에 산다.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생활하는 곳이다. 남광아동복지원은 아이들을 위한 예술문화 프로그램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2006년부터 가야금 교실과 북울림이라는 이름의 모듬북 교실을 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예술강사 제도를 활용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자 가야금 7대와 사물놀이 악기 등을 자체 비용으로 갖췄다. 지난 23일 오후 6시 가야금 교실을 찾았을 때, 강사 이숙영(여·36) 씨는 "악기를 갖추지 못해 이런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하다가 중단하는 기관이 많다. 남광은 (악기를) 사들이더라"고 말했다. 이곳은 어떤 뜻에서 복지프로그램에 예술을 진지하게 도입한 것일까.

가야금 수업은 매주 목요일 오후 6시에 시작한다. 현재 청소년 11명이 A, B조로 나눠 배우는데 이 씨가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하면서 지도한다. 정욱이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친구들은 힙합이나 가요를 많이 들어요. 저는 국악을 배우니 재미가 있고 스트레스도 잘 풀려요. 가야금 산조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영상을 보면 감동해요." 동욱이에게 꿈이 뭔지 물었더니 "판사요. 가야금 연주하는 판사"라는 밝은 답이 돌아왔다. 꿈이 있고, 자기를 존중할 줄 아는 아이라는 인상을 줬다.

이 씨는 "5년째 이곳에서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참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사를 정말 힘들게 하고 험한 말을 곧잘 하던 아이도 있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저한테 와서 이것저것 가르쳐달라며 살갑게 굴기도 하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었지만 음악을 배우면서 더는 약을 먹지 않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남광아동복지원 김경원 팀장은 "19명이 활동하는 모듬북연주단 북울림도 우리의 자랑"이라고 소개했다. 북울림 아이들은 솜씨를 인정받아 1년에 10차례 넘게 초청공연에 나서기도 한다. 북을 치기 전에 어두웠던 아이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 박수를 받으면 자존감이 쑥쑥 자라는 게 보인다고 한다.

인생 진로를 국악으로 잡은 아이들도 나왔다. 김 팀장은 "올해 예술고에 한 명이 진학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3명이 예고에 들어가 예술을 진로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문화와 복지가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융합할 때 어떤 효과가 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들이 연극의 힘으로 차츰차츰 회복해가는 현장도 찾았다.

지난 13일 오후 영도구 절영종합사회복지관 강당에서는 기쁜우리사회복귀시설이라는 기관이 2년째 마련하는 연극 치료 프로그램 '내가 주인공'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기관은 정신장애인이 사회와 가정생활을 원활하게 하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정신장애가 있는 수강생 12명이 둘러앉아 귀를 쫑긋 기울이며 '캐릭터 연구'에 빠져 있었다. 1년 반째 자원봉사로 연극반을 지도하는 극단 동녘 박지현 대표가 '미운 아기 오리'를 놓고 수강생들과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강사)"엄마 오리의 성격은 어땠을 것 같아요?" (수강생)"자식을 사랑해요." "화를 잘 내요." "모성애가 있어요." (강사)"넷째 오리는요?" (수강생)"샘이 많고 미운 아기 오리를 제일 많이 괴롭힐 것 같아요." 웅성웅성 와글와글 캐릭터 분석이 끝나자 곧바로 역할을 나누고 공연에 들어갔다. 수강생들은 저마다 맡은 오리 역할을 즉흥 대사와 함께 표현했다. 넷째 오리를 맡은 보조강사가 미운 아기 오리를 실감 나게 괴롭히자, 해당 수강생은 실제로 아픈 기억이 떠올랐는지 비명을 지르고 도망 다녔다.

기쁜우리사회복귀시설 신은영 팀장은 "이분들은 병원에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직장을 갖거나 사회활동은 하기 힘들며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자기표현이 서투르니 가족관계나 사회관계가 더 나빠지고 사회복귀가 어려워지기 쉽다. 연극을 하면서 자기표현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이고 진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연극 프로그램 역시 예술문화가 사회복지와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융합한 사례이다. 특히,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뚜렷한 계획을 갖고, 장기간에 걸쳐, 전문성 있게 진행한다는 점이 선명했다. 복지가 단순히 생계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민의 삶의 질 자체를 높이는 보편복지로 확장해야 하는 시대 상황에서 문화가 할 일은 많아 보였다.


# 詩人이 된 절영복지관 장애인들, "재미로 시작해 공모전 상도 탔죠"

- 인문 프로그램으로 소통 큰 도움

시(詩)가 정신장애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지난 24일 부산 영도구 절영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인문학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강좌에서는 시의 색다른 쓸모를 접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정신장애인의 자존감과 소통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시 쓰기를 활용한다. 부산의 인문학 공간 빈빈문화원의 김종희 대표가 격주로 금요일에 나와 시 쓰기를 지도하고 그사이에는 수강생들의 자조 모임과 '펜으로 그리는 문학'이라는 강좌를 진행한다. 김 대표는 "시를 활용해 정신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복지관의 인문 프로그램은 현재 절영복지관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 2년째 하고 있는데 내재한 정신장애인의 마음을 감성적으로 자극해 자기를 발견하는 것,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부산의 인문학 운동에 적잖게 힘을 보탠 인물이기도 하다.

소재를 내주고 직접 시를 써오게 한 뒤 여러 사람 앞에서 낭송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로 진행한다. 발표 자체보다는 이를 놓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참가자는 15명.

어떤 효과가 있을까. 수강생 박철민(가명·30대) 씨에게 물어봤다. "2년째다. 재미로 시작했다가 장애인문예공모전에서 상도 받았다. 전에는 엄마랑 많이 싸웠는데 '일일일선'이라는 말을 여기서 배운 뒤 엄마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같이 시 쓰고 토론하는 회원들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박 씨는 "바지랑대를 소재로 쓴 시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빨래를 널어놓은 빨랫줄을 받치고 바지랑대가 우뚝 서 있었다. 빨래도 우뚝 서 있는 것 같았다. 장군이 호탕하게 웃으며 서 있는 모습 같았다"고 덧붙였다.

절영복지관 홍소현 프로그램 담당자는 "시작할 때는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정신장애인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면이 있고, 정신적 어려움 탓에 자기표현이 서툴기 때문이다. 표현이 서툴다 보니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 때문에 가족관계나 사회관계가 또 꼬여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가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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