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는 법을 벗어나 멋대로 제재를 가하는 것을 경계했다. 지난 18일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 때 경찰이 광화문 앞에 버스로 친 차벽은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위법 행위였다. 국제신문 DB

- 세월호 참사 1주기
- 법 수호 책무 가진 경찰이
- 이미 위헌 판결난 차벽 설치
- 유가족·시민 추모 집회 막아

- 법은 국민위해 존재하는 것
- 공권력의 잇단 불법자행은
- 국민을 무참히 짓밟는 짓이고
- 국가 근간을 뒤흔드는 짓이다


훈련관 녹사 최명전이 노비첩 삼가이를 지나치게 사랑하여 그녀가 참소하는 말을 듣고서 그 처 김씨를 칼로 찔러 상하게 했다. 또 집안에서 잃어버린 물건이 있으면 김씨의 의복을 팔아서 충당하니, 김씨가 언제나 굶주림과 추위에 고생했다. 사헌부에서 심문하여 밝혀낸 뒤에 형벌을 검토하여 아뢰니, 임금은 그가 공신이라 하여 직첩만 거두고 먼 지방으로 유배시켰다. 그 아내는 이혼시키고, 삼가이는 곤장 100대를 때려서 아주 먼 변방 고을의 관청 노비로 영구히 소속시켰다. ― '세조실록' 5년(1459년) 11월 4일


'세조실록'에 나오는 위의 기사는 조선시대에 처첩 사이의 갈등이 때로 얼마나 심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대개는 처첩의 갈등이 여인들의 시기와 질투로 말미암은 것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성적 욕구 때문이든 자손을 보겠다는 욕심 때문이든 본처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은 사내들이 먼저 빌미를 제공했다. 또 첩을 들였다 하더라도 총애받는 첩이 횡포를 저지르지 않도록, 처가 섭섭하지 않도록 잘 건사했어야 한다. 그래야 본처가 횡포에 시달리지 않고 집안도 화목해질 뿐 아니라 그 자신도 횡액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저 최명전에게서 국민을 마치 적처럼 대하는 경찰의 모습이 보이는 건 왜일까?

■누구를 그토록 사랑하기에

	주유왕.

지난 4월 16일 밤부터 세월호 참사 유가족 100여 명은 광화문 누각에 고립되어 있었고, 18일 오후부터는 경찰에 연행되기 시작했다. 18일에 세월호 진상규명과 선체 인양 등을 요구하기 위해 개최할 예정이던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에 참여하려던 시민들은 유가족이 연행된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광화문 누각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들 시민을 맞이한 것은 경찰이 설치한 차벽(車壁)과 폴리스라인이었다. 경찰은 차벽을 뚫고 유가족에게 가려는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최루액 따위를 쏘았다. 이쯤이면 전쟁이다. 이런 경찰의 대응을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엄연히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인데, 미리 가로막는 것은 과잉 진압이고 공권력의 남용 아닌가? 게다가 차벽은 명백한 불법 행위다.

경찰의 차벽은 2011년 이미 위헌 결정이 났다. 경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집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봉쇄한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는 "불법·폭력집회나 시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개별적, 구체적 상황에 따라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면서 "당시 조치는 필요 최소한이라고 보기 어려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이미 종료된 공권력 행사에 관한 것이었지만, 2년 가까운 심리 끝에 이 선고를 한 헌재는 "차벽은 없어졌지만, 차벽을 만드는 이런 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어 헌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참으로 그런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경찰 쪽도 할 말은 있었을 터. 20일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차벽은 질서유지선의 일종"이라 했고, 서울경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집시법상 '표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하는 표시나 특징이다. (따라서 차벽은) 질서유지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 차벽이 표지라니. 도대체 누구를 두둔하려고 또 누구를 그토록 사랑하기에 이런 말을 할까?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법을 지키는 신민을 함부로 죽이는 일이고, 둘째는 법을 벗어나 멋대로 제재를 가하는 일이고, 셋째는 남의 손해를 자기 이익으로 삼는 일이고, 넷째는 남의 재앙을 나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일이고, 다섯째는 편안한 사람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고, 여섯째는 아껴야 할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고 미워해야 할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삶을 즐거워할 이유를 놓쳐버리고 형벌로 죽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 까닭을 잊게 된다. 사람들이 삶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군주는 존중받지 못하고, 형벌로 죽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명령이 실행되지 않는다." ― 한비자 중 '안위(安危)'

■경찰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포사.

기원전 779년 주 왕조의 유왕(幽王)은 후궁에 행차했다가 포사(褒姒)라는 여인을 보고는 총애하게 되었고, 아들 백복을 낳기에 이르렀다. 유왕은 결국 신후(申后)와 태자를 폐하고 포사와 백복을 왕후와 태자로 삼았다. 태사인 백양(伯陽)이 말했다.

"화근이 무르익었으나, 어쩔 수가 없구나!"

포사가 좀처럼 웃지 않자 유왕은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웃게 하려 애썼으나 웃지 않았다. 유왕은 봉수와 큰북을 만들어 적이 쳐들어와 봉화를 올리는 것처럼 했다. 제후들이 모두 달려왔으나 적은 보이지 않았다. 성 위에서 그런 제후들의 모습을 본 포사는 크게 웃었다. 유왕은 그것이 기뻐 여러 차례 봉화를 올렸다. 그 후로는 제후들이 믿지 않았고 다시는 달려오지 않았다. 이런 유왕이었으므로 간사하고 아부 잘하며 제 잇속만 챙기는 괵석보를 기용하여 국사를 맡긴 것도 어쩌면 당연했는데, 결국 이런 행보는 백성의 원성을 샀다.

신후가 왕후에서 내쫓겨 태자와 함께 돌아온 것을 본 신국(申國)의 제후는 노하여 서쪽 오랑캐 견융(犬戎)과 함께 유왕을 공격했다. 유왕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의 군대를 불렀으나 오지 않았다.

유왕은 여산(驪山) 아래에서 죽고, 포사는 포로로 잡혔으며 주나라의 재물은 모두 약탈당했다. 유왕이 죽은 것은 포사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왕으로서 지켜야 할 법과 도리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더불어 주 왕조는 멸망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그때부터 '춘추시대'라 부르는 제후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지금 한국의 경찰은 저 유왕처럼 국민의 원성을 듣고 있다. 그럼에도 변명하기에 급급하니, 딱한 노릇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거나 명령을 내렸더라도 법에 따라 올바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결국 경찰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법을 수호해야 할 책무를 스스로 저버리고 심지어 차벽을 세우는 불법행위까지 했다. 경찰의 잘못을 따지는 것은 단순히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평안과 위태로움은 옳고 그름을 잘 가리는 데에 달려 있지 국력의 강약에 달려 있지 않으며, 나라의 존속과 멸망은 권력의 허실에 달려 있지 병력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제나라는 전차 만 대의 나라였으면서도 명목과 실질이 일치하지 않아 군주가 나라 안에서 헛되이 자리만 지키고 명목에 맞는 실질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므로 신하들이 군주의 지위를 찬탈했다."- '안위'

■법을 밟는 것은 국민을 밟는 짓

서울경찰청이 보도자료에서 '표지'의 사전적 의미를 운운했으니, '경찰'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한 번 보자. 문자적 의미로는 "경계하여 살핀다"는 뜻이다. 법률적으로는 "국가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조직으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고 범죄의 예방과 수사, 피의자의 체포, 공안의 유지 따위를 담당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경찰이 행한 것이 과연 이 의미에 조금이라도 맞는가?

"잘 다스려지고 강성해지는 것은 법이 올바로 실행되는 데서 비롯되고, 약해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법을 그릇되게 실행하는 데서 비롯된다." ― '외저설 우하'

왕이 통치하는 왕정이든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정이든 법은 백성이나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경찰은 그 법을 지키고 그 법에 따라 국민을 보호하려고 국민이 낸 세금을 녹봉으로 받는다. 그런데 오히려 법을 어기거나 거스르고 있으니, 이는 법을 짓밟는 짓이나 다름이 없다. 법을 짓밟는 것은 그대로 국민을 짓밟는 짓이고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짓이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매주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