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코리아타운 모습. LA에는 차이나타운, 리틀 도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주민이 모여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말로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지칭한다. 최근에는 광범위하게 사용돼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가리키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가 2006년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을 발간하면서 그 의미가 가깝게 다가왔다. 서 교수는 자신을 재일조선인 2세라고 표현했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우연히 LA에서 디아스포라 2명을 만났다. 그들은 각각 '조선족',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슴에 안고, 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조국(조상의 나라)도, 고국(자신이 태어난 나라)도,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있는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산. 그들에게서 디아스포라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조선족' 이성학(가명) 씨는 중국에서 사업해 큰 재산을 모았다. 그는 중국에서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처음 몇 년 동안 고생하다 지금은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그는 왜 중국을 떠났으며, 한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했을까. 중국 국적을 가진 이 씨는 중국의 교육을 받았고 한국어보다 중국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하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다.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았고 피해를 봤다. 그의 몸속에는 조선족의 피가 흘렀다. 그는 본능적으로 뿌리를 찾아 사촌들이 사는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서 제2의 삶을 살기 위해 사업 계획까지 세웠지만 조국은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다. 이 씨는 한국에서 언제나 '조선족'이었다. 더욱이 사업가인 그에게 수시로 접대를 요구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는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한국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씨는 미국에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누구도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접대 없이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마음껏 사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의 전 가족은 LA에 살고 있다. 이제는 그에게 조국, 고국, 모국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물었더니 그냥 '사업가'라고 답했다.

'고려인' 박민수(가명) 씨는 국적이 우즈베키스탄으로 고려인 3세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한국식 이름을 고수했다. 고려인 2세인 그의 어머니가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것에 비해 그는 한국말을 어느 정도 했다. 그 역시 사업가다. 사업차 한국에 들렀다가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에서 딴 운전면허증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최종적으로 향한 곳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현재 그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그 역시 영주권을 받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그에게 한국에서 살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박 씨는 "나는 고려인이지만 한국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이다. 한국에서는 나를 외국인 취급한다. 내게는 한국과 미국 모두 똑같은 미지의 땅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사업하기 좋은 미국이 낫다"고 답했다. 실제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식 이름을 쓰지 않고 한국어도 거의 모른다고 했다. 그냥 외모만 고려인처럼 보일 뿐.

이들 두 명에게 조국이나 고국은 무의미했다. 이들은 세계시민이나 경계인으로 살고 있었다. 아마도 이들의 자녀세대로 내려가면 조선족이나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은 아예 없어질 것이다.

두 명의 디아스포라를 만나면서 '조국은 왜 이들을 안아주지 못했나?'라는 단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궁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막연히 뿌리만을 내세워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조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