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담당 기자라는 직책을 맡은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퇴근한 뒤에는 틈만 나면 만화를 본다. 대개는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단행본 만화를 사서 보는 편인데, 마음을 끄는 작품을 만났을 때면 책을 사서 집으로 오는 길이 기대감으로 두근거린다. 단행본 만화에 푹 빠져버린 계기가 별달리 있는 건 아니고 단순했다. 내용이 정말 좋은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로서, 스토리텔러로서, 예술작품으로서 만화의 매력은 막강해지고 있다.

홍연식의 2012년 만화 '불편하고 행복하게'(재미주의)는 젊은 예술가 부부가 시골에 들어가 보금자리를 지키며 만화 작업을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독자를 약간 불편하게 하면서도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힘이 웬만한 영화나 소설 못지 않다.

한국의 설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오늘의 독자가 즐길 수 있게 하려고 많은 소설가와 동화작가가 힘쓰고 있다. 만화 쪽에서는 젊은 작가 주호민의 '신과 함께'(애니북스)가 발군이다. 저승사자 염라대왕 조왕신 성주신…. 우리 전통과 민속에서 나오는 신을 오늘, 여기로 불러 이다지도 정겹게 그려낸 능력은 정말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는 유럽의 만화는 예술성이 확연히 높은 작품이 많다. 2009년 국내에 소개된 '폴리나'(미메시스)는 바스티앙 비베스가 그린 예술가에 관한 만화다.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우는 폴리나가 혼란스러운 청춘 시절을 거쳐 어엿한 춤꾼이 되는 모습을 아름다운 터치로 그려낸 이 작품은 바스티앙 비베스를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 작가로 끌어올렸다. 독특한 선으로 춤을 묘사한 여러 장면은 특히 빼어나다.

스페인 만화가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작품으로 2013년 소개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또한 글로만 된 문학 작품을 그림과 글이 만난 만화가 뛰어넘어 버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스페인 내전으로 시작해 현대로 이어지는 한 남성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뻑뻑하고' '걸쭉하게' 그리면서도 절묘하게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 작품은 2010년 스페인국립만화대상 등 상도 여럿 받았다.

일본도 뺄 수 없다. 얼마 전 본 작품은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그린 '신들의 봉우리'(애니북스)였다. 만화와 웹툰 전문가인 본지 서상균 화백에게 "좋은 작품 추천해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2009년 한국어판의 초판이 나온 작품인데, 히말라야를 비롯한 고산준봉과 거기 도전하는 사람들 모습이 가슴 두근거릴 정도로 긴장감 높게 그려져 있다. 긴장감이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독후감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원작인 소설이 만화로 이어진 좋은 사례다.

만화는 웹툰과 연결돼 이 시대 대표적 문화콘텐츠로 자라고 있다. 영화로 제작되는 웹툰·만화도 많다.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 현재 부산에서 활동하는 웹툰 작가도 적지 않고 부산 울산 경남 출신의 전국구 작가도 많다. 부산의 예술지원과 콘텐츠진흥사업에서 만화·웹툰 장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강화한다면, 빠른 기간에 더 좋은 콘텐츠가 부산에서 많이 발신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