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이 천하를 통치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끝없는 땅과 재물을 다스리고 그 속에서 억조창생이 다 행복을 꿈꾸며 군주에게 감사하고 살아가게 한다는 것은 가히 인간이 만든 최고의 제도라 할 만하다. 그러나 역사에서 보면 군주 중 손에 꼽히는 숫자를 제외하고는 태평성대를 이뤄내지 못했다.

군주의 지혜가 어두우면 나라가 혼란하고 백성들이 고통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군주는 정책 일관성이 없고 신료들을 부리는 데 환관이나 비빈들, 간신 세객이 전횡하므로 외척, 권신 세가들이 군주를 주색잡기에 빠트려놓고 주권을 빼앗게 된다. 또 혼군은 정책의 결과를 알지 못하고 충신과 간신을 구분하지 못하며 나태와 쾌락에 빠지므로 충신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어 어김없이 나라를 잃고 마는 것이다.

우리 마음도 참된 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어김없이 만들어진 성격이 득세를 하고 만다. 나의 진정한 가치가 흔들리지 않아야 이성이나 감정, 감각과 직관을 자유자재로 부려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로부터 능히 벗어날 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자산인 기억과 경험, 가치와 의미와 욕망, 인연과 재물과 명예, 세상의 조직과 여론 등을 노복(종)처럼 부려 써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역량을 마음껏 펼쳐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이들이 어떤 역할과 능력을 갖춰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때문에 군주가 간신에게 권리를 빼앗기듯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들이 되어 스스로 감정에 끌려 다니기도 하고, 스스로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스스로 가치의 빈곤이나 의미의 무기력에 빠져 허덕이거나 인연과 조직에 치여 살게 되면 그 고통과 어려움이 얼마나 되는가.

중생이란 '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음을 말한다. 힘은 자기 정체성에서 나오는 데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돈, 지혜, 권력, 지식 등 무엇인가로 대체할 것을 찾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져다 쌓아두거나 모아둔 어떤 것들로 자기 정체성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군주가 권신을 받아들여 놓고 오히려 안심을 얻게 되듯 이성이나 감정, 가치관을 세워놓고 자기로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이라도 들고 그것으로서 나의 존재감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으로 괜찮은 삶이라고 해 오지 않았던가. 나의 욕망을 보다 효과적으로 채워 줄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해버리거나 남에게 더욱 잘 인정받을 어떤 것으로 자부심을 꿰메고 살지는 않았던가.

권신으로부터의 독립! 급하게 무엇으로 대체하지 말고 가만히 스스로를 보자. 가까운 공원을 찾아 벤치에 혼자 앉아도 좋고,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식탁에 앉아도 좋다. 지나간 기억이 현재의 내 정신을 다 차지하지 않도록, 나의 인연이나 내 삶의 잘잘못이 내 현재를 다 차지하지 않도록, 그저 가만히 '존재'해 보자. 이성이 이 시간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명상도 하지 말고, 감정이 이 시간을 뺏지 못하도록 가치관을 세우거나 추억도 하지 말고, 주위를 뺏어가는 산들바람에 의미를 부여해서 정신을 뺏기지도 말자. 그 어떤 것들을 '나'라고 나의 특징이라고 무엇을 찾지도 말고 그저 가만히 아무 것이나 하지도, 느끼지도, 바라지도, 기억도 않으면서 맑은 정신이 여실한 이 참 나를 한 번 찾아보자.

원불교 정관교당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