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볼 야외공연장 객석에서 관객들이 공연 전 만찬을 즐기고 있다.

- 1만7000명 수용 '할리우드볼'
- 매년 6~9월 LA필하모닉
- 클래식 야외공연 펼쳐져
- 공연장 안에서도 시작전까지
- 먹고 마시며 떠드는 분위기

- 매주 금요일 LA카운티미술관
- 광장잔디밭에서 무료 재즈공연
- 연주 중에도 식당처럼 번잡해

이번에는 퀴즈로 시작하겠다. 어떤 장소에서 'PLEASE DRINK RESPONSIBLY'(책임감 있게 드세요)란 안내문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일까?

술집, 음식점, 야구장 등이라고 생각하면 모두 틀렸다. 정답은 클래식 야외공연장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LA의 할리우드볼이다. 할리우드볼은 할리우드 거리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야외공연장이다. 산을 절묘하게 다듬어서 무대와 객석을 만들었다. 1922년 문을 열었으며 1만700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1964년 비틀스가 이곳에서 공연했고 2006년에는 싸이('강남스타일'로 미국에 이름을 알리기 전), 신승훈 등 한국의 대중음악 가수들도 이 무대에 섰다.

할리우드볼 내의 야외 피크닉 지역에서 관객들이 공연 전 식사를 하고 있다.

이곳을 소개하는 이유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LA 시민이 여름철 가장 사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까지 할리우드볼은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여름철 공연장이 된다. 이 기간 거의 매일 다채로운 클래식 공연이 할리우드볼 무대를 가득 메운다.

이 정도의 설명은 할리우드볼에 대한 개괄 수준이다. 참모습은 공연장에서 직접 느낄 수 있다. 클래식 공연장이라면 진지함과 엄숙함이 먼저 떠오르지만, 할리우드볼은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먼저 주차장에서 내려 공연장으로 걸어가다 보면 관객의 손에 들린 엄청난 바구니 크기에서 뭔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 바구니에 든 것은 다양한 음식과 음료, 와인(또는 맥주)이다.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온 관객은 공연 전에 일찌감치 도착해 할리우드볼 내 곳곳에 마련된 피크닉 지역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으로 만찬을 즐긴다. 테이블 위에 까는 식탁보에다 근사한 와인잔까지 챙겨 올 정도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더 놀라운 광경은 공연장 안에서 벌어진다. 무대와 가까운 좌석에는 아예 식탁이 설치돼 있다. 공연 직전까지 객석에서 웃고 떠들며 저녁을 먹는다. 거기에다 무대 바로 밑의 가장 비싼 좌석은 할리우드볼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서비스를 직접 받으며 기분 좋은 추억을 만든다.

공연 직전까지의 분위기만 본다면 도무지 클래식 공연장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공연 중에도 휴식 시간을 이용해 와인과 음식을 먹는다. 생일 축하 케이크까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왜 클래식 공연장에서 '책임감 있게 드세요'라는 안내문이 등장하고 LA 시민이 사랑하는지 이제는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광경은 할리우드볼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LA카운티미술관(LACMA) 광장에서 무료 재즈 공연이 열린다. 시민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광장 잔디밭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여유를 만끽하려는 시민들로 빈 곳을 찾기 어렵다.

그들은 집에서 준비해 온 와인과 음식을 먹으면서 재즈 선율에 몸을 맡긴다. 할리우드볼과 다른 점은 공연 중에도 먹고 마시고 거침없이 떠든다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먹고 마시기 위해 왔는지, 공연을 보기 위해 왔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공연만이 아니라 그 전체를 즐긴다는 결론을 나름대로 내렸다.

할리우드볼과 LACMA의 모습은 문화생활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한다. 물론 LA의 풍경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캘리포니아의 멋진 날씨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문화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관점과 자세가 개방적이고 유연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화와 일상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즐기려는 분위기를 LA에서 많이 느꼈다.

LA에서 부산을 생각해 본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많이 들어섰고 장르를 넘나드는 이색적인 공연도 열리고 있다. 이제는 문화와 일상을 결합해 좀 더 즐기는 분위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 답을 할리우드볼과 LACMA에서 찾고 싶다.

사직야구장에서 '치맥'(통닭+맥주)과 함께 야구를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영화의전당이나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야외공연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