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양(李義養·1768~?)은 1811년(순조 11년) 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행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이 작품(부산시 유형문화재 79호·사진)은 당시 일본 남화(南畵)의 대가로 평가받던 다니분초(谷文晁·1763~1840)의 그림을 보고 그린 수묵산수화이다.
이의양과 함께 일본에 파견됐던 역관 진동익(秦東益·1773~?)은 이 그림에 쓴 제시에서 다니분초의 작품을 방(倣)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의양이 다니분초의 어떤 그림을 보고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통신사를 수행하는 화원이 일본에 그림을 전해주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처럼 일본 화가의 작품을 보고 그린 사례도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더욱이 이의양의 산수도는 조선의 화원이 일본 남화가의 작품을 방하여 그렸음을 언급한 유일한 작품이다. 조선후기 한일 회화 교류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이유다.
다니분초의 그림을 보고 그렸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의 화풍은 중국 원대(元代)의 대표적 문인화가 황공망(黃公望·1269~1354)과 연결돼 있다. '조선에서 이해된 황공망의 산수화풍'인 셈이다. 2단 구성으로 상단에는 원경의 주봉우리들을, 하단에는 근경의 언덕과 나무를 묘사한 것, 피마(披麻)준이 두드러진 근경의 언덕 표현 등은 조선시대 황공망 화풍의 산수화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내용이다. 이영윤(李英胤·1561~1611)의 '방황공망산수도', 장승업(張承業·1843~1897)의 '방황자구산수도' 등이 대표적이다. 피마준은 마(麻)의 올을 풀어서 늘어놓은 듯 실 같은 모습의 준을 말하며, 황공망이 즐겨 사용했다. 이의양이 다니분초의 작품을 방작한 것이긴 하지만, 이미 조선에서 널리 구사하고 있던 황공망계의 남종화풍을 반영해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