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 700명 구한 무선장치- 무선통신의 발명자 윌리엄 마르코니(1874~1937)가 무선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가 이 기술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마르코니는 영국으로 가서 성공했고,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때 이 기술은 700명의 목숨을 구했다.

- 촘촘하게 얽힌 과학 역사
- 혁신의 시작은 사소한 우연
-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

책장을 펼치면, 과학 지식과 과학 역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도 촘촘하고 흥미롭게 전개돼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놀랍기까지 하다. 책의 여섯 번째 장 '팽팽하고도 유연한 대응'을 예로 들어보자.

중세 유럽의 웨일즈에는 긴 활을 잘 다루는 부대가 있었다. 너비가 손바닥만 한 떡갈나무 문을 관통해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14세기가 되자 사거리가 360m나 되는 이 강궁(强弓) 부대는 여덟 시간의 전투에서 활 50만 발을 발사하는 위력을 갖춘다. 여기에서 활을 잘 다룬 영웅 로빈 후드 이야기가 가지를 치고 나온다. 로빈 후드 이야기는 플랑드르 여인에 대한 일화로 이어지면서 네덜란드 간척 기술로 꼬리를 물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풍차 기술을 발전시킨 시몬 스테빈으로 연결된다. 이런 기술 덕분에 산업이 발달하자 이자 계산표(이것도 스테빈이 발명한다)가 나오고, 이는 은행업의 수준을 높인다. 이 여파가 신대륙으로 넘어가자 운하 기술, 철도 기술, 백화점 산업의 발달을 돕는데 결국에는 사이버네틱스와 관성 항법 장치 출현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미국 돈을 뜻하는 기호인 ＄가 에스파냐어인 페소의 P와 S에서 나왔다는 등의 풍부한 상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2000명 숨진 난파사고, 정확한 경도 측정 계기로- 1714년 클로디즐리 셔블 함장이 이끈 함대는 부정확한 지도 탓에 난파했고 선원 2000여 명이 희생됐다. 이 사고를 계기로 영국은 지도 제작에서 정확한 경도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궁리 제공

저명한 과학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과학 방송 진행자 제임스 버크의 핀볼 효과는 '사소한 우연들이 이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꾼다'는 주제를 앞세운다. 실제로 이 책은 수많은 과학 발견의 역사와 사건이 함께 뛰어노는 운동장처럼 사례가 풍부하고 생기가 넘친다. 중요한 점은 제임스 버크가 '운동장'이라는 표현 대신 '그물'이라는 개념을 쓴다는 데 있다. 상당한 괴짜였고 허풍도 심했던 존 서터는 사업에 실패하자 처자식도 버려 둔 채 신대륙 아메리카로 건너가 약간의 사기 행각을 벌여 가며 제재소 사업에 도전한다. 이때 그의 손에서 캘리포니아의 금맥이 발견된다. 골드러시가 터지자 세상 자체가 변했는데, 저자는 이들 사건은 하나의 그물 안에 있으며 그 속에 있는 '내적 연관성'을 주목해야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소개한 과학적 사건 사이에 촘촘하고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임스 버크가 그런 장면과 사건 사이에 의미를 부여해 서로 연결하고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로서 저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이 책의 의미는 일단 재미에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과학 현상과 원리는 마냥 쉽지만은 않아서 이해가 어려운 장면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과 과학사의 세계를 매우 흥미롭고 쉽게 제시한다. 또 한가지 의미는 '세상의 사물과 현상 사이에 존재하는 내적 연관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마치 불교적 세계관을 서양 과학사를 통해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과학기술을 통해 배우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선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뭘까. 서구 세계가 과학 발전에 얼마나 애썼는지 실감 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구 문명은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세계를 정복했으며, 발달한 사회를 이뤘다. 실제로 그 현장이 어떠했는지 이 책은 생생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