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개울가 옆에 자란 소나무 등걸에 앉아서 가사를 꿰매고 있다. 스님 앞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실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이 그린 '산승보납도(山僧補衲圖·사진)'다. 이 작품은 '고씨화보(顧氏畵譜)'에 있는 명나라 화가 강은의 '산수인물도'를 방작(傍作)했다. 방작이란 대가의 그림을 본 떠 그리는 것으로, 겉모습만 비슷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 속에 담긴 뜻을 살리는 점에서 창작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작품은 구도나 소재를 화보에서 가져왔지만, 그림의 틀은 화보의 원작과 확연히 다르다. 계곡을 더욱 부각해 노승이 자리 잡은 공간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했으며, 소나무와 언덕, 절벽 표현에서 강은이 사용했던 얇고 일정한 길이의 선 대신 굵고 불규칙한 필선을 자유롭게 구사했다.
작품 오른쪽 위에는 조선 후기 최고 미술평론가였던 표암(豹菴) 강세황(1713~1791)의 평이 적혀 있다. '산승보납도는 고씨화보 가운데 강은이 그린 것인데, 현재(玄齋)가 그 뜻을 대략 모방하여 이렇게 그렸으니 매우 기이하다. 표옹(豹翁)은 평한다'라고. 심사정은 조선 후기 남종화가 조선에 정착, 유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화가이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화보를 보고 방작을 거듭하며 그림을 익혔다. 미술학원이 없어도 다른 사람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배울 방법이 바로 방작이었다. 이를 통해 독창적 화풍이 탄생했기에, 방작은 대가로 성장한 다음에도 이어졌다. 중국 명·청 나라 시대에는 다양한 화보가 제작됐다. 앞서 언급한 고씨화보를 비롯해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 '시여화보(詩餘畵譜)' 등은 미술교본으로 유용하게 쓰였다.
부산박물관 소장 '심사정 필 산승보납도'는 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세로 36㎝, 가로 27.2㎝ 크기다.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10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