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시내 대형 광고판에 부착된 영화 '디 인터뷰' 포스터. '이 무식한 미국 놈들을 믿지 마십시오'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 무식한 미국 놈들을 믿지 마십시오!'

지난해 12월의 일이었다. LA 시내에서 운전하다가 대형 광고판에 붙은 한 영화 포스터를 보고 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 포스터에 적힌 한글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순간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허벅지를 꼬집을 뻔했다. 그 포스터 속의 한글은 앞에서 말한 것이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의 대로에 당당하게 내걸린 영화 포스터에 '미국 놈들을 믿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이 한글로 담겨 있다니!

무슨 영화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영화 '디 인터뷰'였다. 그 포스터는 시내의 대형 광고판 외에 버스 정류장, 쇼핑센터 등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영화를 제작한 소니 픽처스가 개봉을 앞두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것이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무렵 해킹 공격 소식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부터 '디 인터뷰'는 단순한 오락 영화에서 국제 정치 이슈로 탈바꿈했고 콧대 높은 미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일련의 후폭풍은 국내에도 많이 보도돼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대신 영화를 계기로 드러난 평범한 미국인의 반응을 보여주고 싶다. 이는 국가가 아닌 미국인 개개인이 북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바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연히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겠다. 해킹 사건이 발생한 직후 LA 시내의 유명한 LP 가게를 찾았다. 60대로 보이는 직원이 다가와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자 그 직원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는 한국어를 조금 배웠다고 자랑한 뒤 갑자기 한국어로 황당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의 말들은 이 자리에 공개하지 못한다. 90%가 욕이었기 때문이다. 직원이 욕을 한 대상은 김정은(사실 김정일인지 김정은인지 발음이 불분명했다. 대부분 미국인은 둘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었다. 그의 말투에는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조롱이 묻어났고 증오도 느껴졌다.

외국인에게 영어를 교육하는 미국인 강사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우연히 만난 이 강사는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해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욕만 하지 않았을 뿐 영어 강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갖 지저분한 단어들을 동원해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비난하고 조롱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며?"라고 한국까지 비꼬았다.

민감한 시기여서 그런지 '한국에서 왔다'고 밝히면 미국인은 북한과 김정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는 한국과 북한이 같은 민족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북한과 김정은을 조롱한 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암묵적인 동의를 구하려는 의도가 다분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 대한 조롱까지 섞인 느낌이 들었다.

미국 내에서 한국의 위상은 분명 예전과 달라졌다. 삼성과 현다이(HYUNDAI를 이렇게 부른다)가 미국인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고 박찬호, 류현진 등 메이저리거의 활약, 여기에 한류 열풍까지 가세해 한국의 위상은 한껏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 남북한을 통틀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북한의 김정은이다. 그리고 평범한 미국인이 평범한 한국인에게 묻는 첫 질문도 분단과 관련된 문제이다. 아무리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 해도 결국은 분단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화 '디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미국인의 시각을 보면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 너무 호들갑을 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