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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송나라 휘종(1100~1125) 때 궁중 식문화를 묘사한 '문회도' 일부. 교양인 제공 |
- '만한전석' 滿漢 융합 150종 요리
- 마오쩌둥 혁명 위해 매운맛 장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중국 요리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혁명의 맛 저자인 미술 평론가이자 요리 평론가 가쓰미 요이치(1949~2014)는 "중국 요리는 다른 어떤 곳의 요리보다 시대와 함께, 그리고 정치적 분위기와 인간의 움직임과 함께 책장을 넘기듯 변한다"며 "한족을 중심으로 후이족(回族), 몽골족, 만주족 등 다양한 민족의 문화가 섞여 오늘날과 같은 깊고 넓은 중국 요리의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중국 4대 요리(베이징·상하이·광둥·쓰촨 요리) 중 하나인 베이징 요리에서 그 사례를 살펴보자.
베이징은 원·명·청나라를 거쳐 오늘날까지 중국 정치·문화의 중심 도시이다. 각지의 매력적인 요리가 저마다 독자성을 유지하며 베이징으로 들어왔다. 오늘날 베이징 요리 체계는 청나라 때 구축됐다. 남방에서 독자적으로 성장한 상어 지느러미 요리, 난징 요리가 진화한 베이징 카오야(베이징 오리 구이) 등이 이 시대의 산물이다.
특히 '만한전석(滿漢全席)'과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 때 처음 등장해 6대 황제 건륭제 때 완성된 이 요리는 처음에는 만주족을 대접하려고 한족이 고안한 연희 방식이었다. 건륭제가 양저우를 순행할 때는 이미 만한전석의 양식이 정해졌다. 남쪽 요리와 북쪽 요리를 각각 54종씩 마련해 크고 작은 요리가 전체 108종, 만주족의 뎬신(가벼운 간식거리)을 44종 더해 150종이 넘었다. 만한전석은 만한(滿漢) 융화를 위한 정치적 요리다.
상어 지느러미 요리가 황실 식탁에 등장한 것은 18세기 후반으로 그 중심에 서태후가 있다. 서태후는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즐겨 먹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함께 이 책은 중국 역사상 송나라 때에야 미식을 즐기는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황실의 타락과 부패에 편승한 환관의 발호가 역설적으로 요리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저자가 문화혁명 시기부터 덩 샤오핑 시대까지 베이징 상하이 쑤저우 등 중국 각지를 오가며 중국 현대사와 중국 요리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담아 관심이 쏠린다.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며 고향인 후난 요리의 매운맛을 장려한 마오쩌둥, 베이징의 오랜 서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뒷골목 '후퉁'(胡同), 공산당 간부들의 화려한 연회, '마오쩌둥 어록' 암송이 필수 코스였던 1970년대 거민식당 등이 그 예이다.
루게릭병을 앓던 저자는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9장) 원고를 새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