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초상화 왕국'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초상화는 3000여 점. 초상화 역시 시대에 따라 양식의 변화를 거친다. 건국 초기인 15세기에는 의자 밑의 옷자락이 구겨지지 않게 직선으로 처리했고 족자에 발을 디딘 모양도 '11'자이다. 16세기에는 옷자락이 직선에서 부드러운 선으로, 발은 '八'자 모양으로 바뀐다.
17세기는 초상화 절정기였다. 정형화되는 시기로, 옷자락이 길게 내려오고, 족자의 발은 '八'자 모양이다. 과장된 화풍도 등장한다. 18세기로 넘어가면 초상화 대상이나 형식 모두 다양해진다.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주는 것 역시 특징이다.
'반곡 이덕성 초상'(보물 제1501호·1696년·사진)은 17세기 공신도상과 18세기 사대부상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준다. 정형화된 공신도상으로부터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당시 초상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화폭의 길이 167㎝, 너비 99㎝이며 앉아있는 인물의 높이가 145㎝에 달하는 대작이다.
이 작품의 기증자는 초상화의 주인공 이덕성(1655~1704)의 후손 이은창·이성주 부자다. 한국 고고학계의 원로 이은창 씨는 효성카톨릭대와 대전보건대학의 박물관장을 지냈다. 아들 이성주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고학을 전공하고 현재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덕성은 본관이 전주(全州)로 1682년(숙종 8년)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동래부사, 해주목사, 황해도 관찰사, 충청감사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