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Vairocana)은 통일신라 때 화엄종 사찰의 주존불로 크게 유행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의미인데, 때와 장소, 사람 등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깨달음의 내용을 두 손으로 나타내는 수인(手印)은 지권인(智拳印)이다. 이는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오른손 손바닥으로 감싸 안은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 한다. 비로전(毘盧殿) 또는 화엄전(華嚴殿)의 경우 비로자나불만 봉안했다고 보면 된다.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국보 제233호·사진)는 경남 산청군 지리산 폐사지에 있던 석조 비로자나불 대좌의 중대석 안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곱돌(蠟石)로 만든 것이다. 전체 높이 14.5㎝.
이 사리호에는 '영태(永泰) 2년 병오년'이란 글자가 겉면에 새겨져 제작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영태는 중국 당나라 연호(年號)로 신라 혜공왕 2년(766년)에 해당한다. '영태 2년'이라는 명문을 통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린 귀중한 자료이다. 이 사리호는 불상의 대좌 중대석에 법사리를 봉안한 첫 사례이다.
사리호에는 8~11자를 15행으로 돌아가면서 글자를 얕게 새겨 넣었다. 글자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긴 하지만, 대체적인 내용은 알 수 있다. '영태 2년 병오년 7월 2일에 석법승 법연 두 스님이 도온애랑의 추복을 위해 무구정광다라니를 함께 봉안하여 석남사 관음암에 안치했는데 이 공덕으로 도온애랑의 영신과 발원인 두 스님은 삼악도의 업을 멸하고 성불하기를 원한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