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학인들이 영국 노리치 작가센터에서 간담회를 열고 있다.

- 찰스 디킨스 세상 떠난 지 150년
- 살았던 집 지금도 찾는 발길 북적

- 유네스코 선정 문학도시 노리치
- 국내외 유망작가 유치 창작 독려
- 세계문학 심장부의 저력 실감
- 부산작가들 "교류 확대 모색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크리스마스 캐럴'의 찰스 디킨스, '달과 6펜스'의 섬머셋 모옴, '테스'를 쓴 토마스 하디는 물론 생존 작가 중 최고 반열에 오른 '해리 포터'의 조엔 롤랑까지. 모두 영국 출신의 세계적 대문호들이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수많은 문호를 거느린 영국, 참 부럽고도 무서운 나라다. 부산문화재단이 젊은 예술가 해외진출 지원을 위해 가동 중인 '5·6고리' 사업의 참여 문학인 7명은 현지에서 그들의 저력을 확인하고 교류 기회를 탐색했다.

■ 영국인의 자존심, 디킨스

영국 런던의 찰스 디킨스 박물관.

영국 도착 직후인 지난 3일, 부산 문학인들은 찰스 디킨스(1812~1870) 박물관을 찾았다. 번잡한 런던의 차도를 벗어나 평화로운 주택가로 들어서니 초록색 대문이 일행을 맞았다. 찰스 디킨스와 그의 가족이 2년 동안 살았던 집으로, 1925년 박물관이 됐다. 집필실, 의자, 크리스마스 캐럴과 올리버 트위스터 등의 원문, 실제 글을 쓰다 버린 종이들을 재현한 종이 쓰레기 바구니 등.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이곳에 살아 있었다. 침대가 너무 작다는 질문에 박물관 관계자는 벽면에 그려진 디킨스의 실루엣을 가리키며 "키가 작았다. 실제 썼던 침대는 아니다"고 말했다.

박물관 주변으로 그가 산책했던 길, 어린 시절 일했던 법률사무소, 작품을 구상하며 자주 들렀던 분수대 공원, 즐겨 찾았던 자그마한 펍 바 등이 오밀조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 오후 7시께 문을 열고 들여다본 펍 바는 고인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산 문학인의 평가는 뜻밖에 냉정했다. 소설가 최은순은 "지나치게 독자에 영합하는 감상적인 글쓰기와 유대인을 비하하는 내용 등으로 그다지 인기는 없다"고 말했다. 옆에 선 이정임, 서진 소설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 작가·독자가 행복한 문학도시

런던에서 기차로 두 시간 달려간 노리치. 2012년 유네스코 문학도시로 지정된 이곳은 지난 900년 동안 문학의 도시로 불렸다. 의회민주주의 공표, 혁명의 발발, 노예제 폐지를 위한 투쟁이 이곳에서 이뤄졌으며, 영국 독립출판사의 5%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도 수많은 시인, 소설가, 극작가, 번역가, 문학 비평가 등의 방문지다. '최초'라는 수식어도 많다. 영어로 쓰인 책 중 최초의 여성 작가 작품이 노리치에서 쓰였고, 잉글랜드에서 최초로 지역 도서관과 지역 신문이 생겼으며, 영국 최초의 문예창작 석사과정이 1970년 노리치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 개설됐다.

유네스코 문학도시로 선정되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노리치 작가센터를 지난 4일 찾았다. 노리치 작가센터를 안내한 프로그램 디렉터 조나단 몰리는 "부산이 유네스코 영화도시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유네스코 문화도시 간 긴밀한 네트워킹이 가능한 고리가 생겼다"며 환대했다. 그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물론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는 망명 작가들이 터전을 삼는 작가 보호의 도시"라고 설명했다. 올여름 배수아 작가가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창작과정에서부터 전 세계 문인들과 문화적 교류를 했다.

부산 문학인들의 관심은 레지던시 작가들의 모집 방법과 작가 개발 사업의 참여 방법 등이었다. 그림책 작가 장혜진은 "신진작가의 프로그램 참가 방법과 외국에서의 출판 경로를 알고 싶다"고 물었다. 아쉽게도 현재 진행되는 신구 작가의 멘토링 프로젝트, 출판 지원 등은 유럽권 작가가 주를 이루었다. 조나단 몰리는 "언어적 장벽 등으로 여러 프로그램이 아시아권에 개방되지 못했지만,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10회째를 맞이한 '월즈문학축제'를 언급하며, "매년 세계작가를 초청해 콘퍼런스를 진행한다. 예술이면서 기술이고 또 직업이기도 한 글쓰기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서진 소설가는 "한 번쯤 머물면서 작업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라면서 "지방 작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거쳐 이곳에 오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부산문화재단 차재근 문예진흥실장은 "노리치와 지속적인 교류를 해 우리 작가들이 세계 작가들과 창조적 문화를 체험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8박 10일간의 일정 동안 일행은 세계 문학의 심장부를 파고들 작지만, 소중한 첫 단추를 끼웠다.

런던·노리치=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