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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군사쿠데타 직후 경향신문 재직 당시 이구열 기자. 돌베개 제공 |
팔순을 넘긴 이구열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기자이다. 불혹 무렵이던 1975년 자신이 문을 연 한국근대미술연구소 소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인터넷 공간에 미술 관련 각종 자료가 넘쳐나고, 언론사마다 기자들이 맡은 분야가 따로 있지만, '미술기자' 이구열이 일하던 50년 전의 풍경은 전혀 딴판이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궁핍했고, 정치적으로도 격변기였다.
그가 기자로 일했던 시기는 15년 남짓. 이구열 기자는 1959년 신조형파 제3회전에 관한 관람평으로 처음 신문 지면에 등장한다. 그의 기사를 통해 우리는 김흥수 김환기 이응노 백남준 윤이상 박수근 등 거장들과 만날 수 있었다.
나의 미술기자 시절-한국 최초의 미술기자 이구열의 취재노트는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신문사의 미술기자로 일한 이구열의 자전적 기록이다. 칠순 무렵 시작한 이 기록은 10여 년에 걸쳐 완성됐다.
황해도가 고향인 그는 국민화가 박수근과의 인연도 책에 담았다. 국선에서 해마다 입선했던 박수근은 1957년 제6회 국선에서 어이없게 낙선되는 충격을 받는다. 이 탓에 평소 술을 멀리했던 박수근은 날마다 폭음을 했다. 결국, 간염과 백내장이란 몹쓸 병을 얻었고, 결국, 왼쪽 눈을 실명했다. 생애 마지막 2년간 한 눈만으로 예술혼을 불살랐던 박수근은 1964년 간염과 신장염이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1975년 박수근 10주기 기념 유작전 때 카탈로그 서문을 직접 쓰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해냈다.
이구열 기자가 미술 정보를 얻는 방법은 오로지 열정과 발품이었다. 전위예술가 백남준을 국내에 소개하는 장면도 그랬다. 그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1966년 1월 )와 '뉴스위크'(1967년 2월)에 보도된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놓치지 않고 국내 신문으로 옮겼다. 한국 미술가나 예술가가 세계적 권위의 시사잡지에 실린 것은 당시 백남준이 유일했다.
그래서 아트인컬쳐 김복기 대표의 이구열 기자에 대한 평가는 남다르다. '오늘날 우리 근현대 미술 연구자들이 기술하는 수많은 기록은 기자 이구열의 발품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