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학인들이 체코 프라하의 카프카 문학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지역의 젊은 문학인 7명
- 해외진출 지원받아 방문

- 카프카 소설속 장면 재연
- 자본주의 풍자 조각상서
- 문학의 새로운 길 구상
- 현지와의 접촉면 찾기도

체코는 두 얼굴의 나라다. 동유럽 여행객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는 관광지이면서 누구보다 뼈아픈 역사를 지녔다. 수백 년간 나라를 잃었고 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됐으며, 민주화를 요구하던 국민은 옛 소련의 탱크에 처참히 짓밟혔다('프라하의 봄'). 혹독했던 세월은 찬란한 문학으로 빛을 발했다. 시인 사이페르트가 노벨문학상(1984년)을 받았고, '변신'의 프란츠 카프카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 등 걸출한 문학인을 배출하면서 세계 문학사의 주요 지점을 차지했다.

일제강점기, 민주화 투쟁 등 한국과 닮은 그들의 역사가 부산의 예술인을 체코로 불러들였다. 부산문화재단이 젊은 예술가의 해외진출 지원을 위해 지역의 젊은 문학인 7명(소설가 3명, 평론가 3명, 그림책 작가)과 함께 프라하를 찾은 것. 참가 문학인은 김필남 이희원 정기문(이하 평론가), 이정임 최은순 서진(이하 소설가), 장혜진(그림책 작가) 씨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 예술가들에게 국제교류와 해외진출의 기회를 주기 위해 오대양 육대주를 고리로 연결하겠다는 '5·6고리' 사업으로, 올해로 3회째다. 프라하에 이어 런던을 찾는 8박 10일의 일정을 두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 프라하 전체가 '카프카 박물관'

	프라하에서 만난 다비드 체르니의 설치작품. 자본주의 체제를 꼬집는 내용이다.

방문 첫날인 지난달 29일, 일행은 카프카의 행적을 좇았다. 카프카가 글을 쓴 집필장소, 생가(지금은 카페로 바뀌었다), 카프카 서점, 그가 다녔던 학교 등 프라하 전체에 카프카의 숨결이 생생했다. 박물관은 오감을 일깨우듯 입체적인 전시를 보여주었다. 그가 사귀던 여성들의 사진과 관련 설명을 눈높이에 맞게 걸어놓고, 단편소설의 장면을 실제 상황으로 재연하거나 그림, 설치 작품 등으로 형상화했다.

소설가 서진은 "비주얼한 문학관이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카프카의 유적이 프라하에 33곳이 있을 만큼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평론가 이희원도 "지금 현재 카프카가 어떻게 읽히고 감각되고 있는가를 알게 하는 공간이다. 그의 책을 읽은 사람은 텍스트를 직접 느끼게 하고, 안 읽은 사람은 읽고 싶은 느낌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카프카의 책은 쉽지 않다. 한 작가는 징그러울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고도 했다. 서진은 "돈에 목숨을 거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자신을 유배시키고 결핵까지 걸린 꼬장꼬장한 그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가 없었다면 카뮈나 마르케스, 사르트르도 없었을 것"이라고 선배 작가를 두둔했다.

카프카만큼 일행을 끌어당긴 대상이 또 있었다. 프라하 곳곳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꼬집는 다비드 체르니의 설치작품들이다. 카프카 박물관 입구에 벌거벗은 두 남자 조각상이 체코 지도를 형상화한 수조 위에서 오줌을 갈기고 있고, 건물 꼭대기에는 목 매달린 사람 조각이 걸려 있었다. 자유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현대인을 풍자한 것. 평론가 김필남은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예술로 승화시킨 게 매력적"이라고 감탄했다.

■ 유럽인에 감동 줄 문체는 무엇

이튿날은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 박물관을 찾아 님부르크시로 떠났다. 그는 풍자적·해학적 문체로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정권의 탄압을 받은, 슬픈 작가다. 마침 이날은 작가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의 작품을 영화화한 '가까이서 본 기차', '줄 위의 종달새' 등을 미리 본 평론가 이희원은 "우리의 80년대 문학은 너무 엄숙하고 이데올로기적이다. 해학과 풍자적인 그의 작품을 보며 과거를 불태워 체제를 무너뜨리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체코의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아르고 출판사 홍보 매니저 리차드 끌리츠닉과의 간담회였다. 두 시간의 질의, 응답을 통해 미디어와 자본주의에 장악당한 체코 출판계의 현 상황과 한국 문학의 체코 내 위상, 유럽인을 감동하게 할 문체 등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나흘간의 방문은 어떤 자양분이 됐을까. 소설가 이정임은 "이곳에서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연결하는 다음 작품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그림책 작가 장혜진은 "그림책의 번역이 가능한 출판사와의 접촉 방법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문화재단 차재근 문예진흥실장은 "이번 방문은 부산 문학인들의 유럽 진출 거점 확보 가능성 타진에 있다. 도시가 주는 예술적 감흥이 큰 만큼 집필이 가능한 레지던시 공간 확보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프라하=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