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꽂힌 책들을 본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과 서점에서 호기심으로 매만지며 구입한 책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한 번 이상 읽은 책, 읽지 못한 책, 읽다가 만 책들을 보며 며칠 전 누군가에게 받았던 질문을 떠올린다. 이 바쁜 세상에 왜 책을 읽어야 하나요? 서늘한 마음에 잠시 망설이다 한 대답은 이렇다. 주머니에 돈을 잃는 것은 금세 알지만 삶의 본질을 잃는 것은 알 수 없다고. 때때로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지 않은 답은 책을 통해 스스로 얻어야 한다고.

'책 속에 길이 있다'는 흔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책은 무엇이며 길은 무엇인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책의 의미와 가치는 책에 있으므로 결국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삶의 길 위에서 만나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방황하거나 좌절로 벗어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길을 찾기 위해서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

누구나 한 번쯤 명문 대학의 필독서나 유명인의 추천 도서 등 '타인의 목록'을 뒤적여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목록을 보고 몇 권이나 읽었는지 헤아리며 괜히 기죽은 적도 있을 것이다. 그 목록만 보다가는 "나만의 마음속 서재를 만들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한 자가 있다. "읽어야 할 수많은 책의 목록 때문에 이미 읽은 책들이 놓인 마음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읽은 책들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퍼뜨려 나누는 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내 마음의 도서관"을 개관한 책이 '마음의 서재'이다.

'마음의 서재'는 마음에 새겨진 책 이야기다. 이야기는 감상문이 아니라 삶의 화두와 책 속의 삶을 연결해 인문학으로 쓴 50편의 '편지들'이다. 인문학 또는 교양이 왜 필요한가. 이러한 화두에 저자는 교양 자체가 곧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을 묘사한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를 든다. 타인의 시선에 봉사하는 고통스러운 교양이 아닌 자기 내부의 기쁨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교양이라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기술'의 교양이 가진 최고봉은 '자신의 기쁨을 곧 타인의 기쁨으로 만드는 기술'이라 전한다.

우리가 연예인보다 더 관심을 두지 않는 대상이 가까운 타인들이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느라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다시 읽는다. 주인공을 통해 '타인의 삶에 나를 은유'하는 모습을 발견하며 그것을 "타인의 삶이 내 삶의 또 다른 얼굴임을 포착하는 은유의 상상력"이라 한다. 타인의 결핍과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게 되면서 주인공은 잃어버린 순수함을 찾게 된 것이다.

삶의 길 위에서 우리는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흔들리며 길을 헤매거나 잃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주거나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책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삶의 의미가 메마르지 않도록, 미래를 생각할 수 있도록, 꿈을 꿀 수 있도록, 나를 풍요롭게 하는 목록을 만들어 책장을 채운다면 진정 내 '마음의 서재'가 될 것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