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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아자르증이라는 전염병을 일으키는 모래파리. 후마니타스 제공 |
- 인류 특히 빈국을 괴롭혀온 전염병
- 말라리아와 칼라아자르증 이야기
- 치료제 개발·현장에는 관심없는
- 의과학자·제약회사에 일침도
말라리아의 씨앗은 인류, 특히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열대 빈국의 국민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는 두 개의 전염병에 관한 이야기이다.
말라리아는 '인류의 천형'이라고도 불리는 대표 전염병이다.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된 얼룩날개모기가 인간 몸에 붙어 피를 빨 때 모기의 침샘에 저장돼 있던 가느다란 기생충을 사람의 피에 주입하면서 시작된다. 말라리아 기생충이 알제리에 파견된 프랑스 육군 의사에 의해 처음 관찰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인 1880년의 일이다. 이후 70년가량 수많은 학자의 헌신과 열정, 시행착오로 질병의 원인과 매개충, 감염 경로 연구가 이뤄졌고 지금은 질병의 기제가 속속들이 밝혀졌다. 충분한 자원만 주어진다면 완치할 수 있는 항말라리아 약물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21세기 현재 최소 2억5000만 명이 말라리아에 걸리고 있으며 2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 "불필요한 죽음이다." 저자는 개탄한다.
칼라아자르증이라는 질병도 다르지 않다. 인도 아샘 지방 말로 '검은(칼라) 병(아자르)'이라는 뜻의 이 전염병은 흡혈 플레보토무스 모래파리가 리슈만편모충이라는 기생원충을 사람에게 옮겨 일으키는 질병이다. 칼라아자르가 인간을 처음 공격한 것은 1824년, 스코틀랜드 출신 병리학자이자 군인인 윌리엄 부그 리슈만이 이 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비장에서 기생충을 발견한 것은 1900년이다. 1940년대 창궐했던 칼라아자르증은 1965년 들면서 거의 잊히는 듯했으나 1972년 인도 바이샬리 지방에서 재유행하기 시작, 지금은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등지에 재토착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연간 130만 명이 새로 감염되고, 3만여 명이 사망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 치료제는 없다.
혜성에 로봇을 보내고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 조작까지 하는 눈부신 생명공학의 발전에도 발견된 지 100년이 훨씬 넘은 질병을 아직도 퇴치하지 못해 수백 수천만 명의 목숨이 오늘도 위협받는 사태에 이르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저명한 기생충학자이자 현장 연구가인 저자는 치료제 개발에 앞장서야 할 서방 세계의 의과학자와 제약회사에 화살을 돌린다. 이윤이 남는 약만 만들어 파는 제약업계는 저소득 지역 주민이 앓고 있는 질병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언론을 장식하는 휘황찬란한 연구들은 연구실 안에만 있을 뿐이고 현장에서는 구경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풍부한 제3 세계 현장 경험과 실험실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실험실 안의 과학과 현실에서의 과학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존재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 미국 국제개발처의 말라리아백신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실질적인 연구 성과는 없이 천문학적 연구비만 받아 가로챈 부패 스캔들은 '황우석 사태'를 겪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 진짜 악당들은 부패한 과학자가 아니라 이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은 기성 과학자들의 침묵이라는 일침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