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의 사진가 김홍희(55) 씨. 1999년 '세기말 초상'을 시작으로 2012년 '골목-시간의 통로전'까지 사진전시회, 사진집·책 출간을 폭풍처럼 해냈던 김 작가. 근황이 궁금해 지난 22일 부산 송정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모터사이클(바이크) 여행 다녀요.
-바이크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지 몇 년 되는 것 같은데, 바이크 매력이 뭡디까.
▶활강하는 독수리가 된 기분이랄까…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더니, 50대 들어 배운 바이크에 빠진 걸 보니 체질에 맞는 모양입니다.
▶30대와 40대는 사진 찍고, 글 쓰고 그리고 술 마시는 게 생활의 전부였어요. 취미가 따로 없었지요. 아니, 사진 찍는 게 취미고, 글 쓰는 게 취미였던 셈이지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바이크를 타게 됐는데 아, 이게 스릴이 있는 거라요. 바이크를 타면 혼신집중해야 하거든요, 그것도 평지 도로가 아니라 산(오프 로드)에서 타면.
-위험하지 않아요? 예전에 멋모르고 타다가 트럭에 받혀 30m를 날아간 적이 있는데.
▶재미있는 건 다 위험해요. 무모하지 않으려 노력하죠.
-바이크를 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7년 EBS의 세계 테마기행 '사진작가 김홍희의 볼리비아 방랑' 촬영 차 볼리비아를 여행할 때였어요. 그 프로그램의 탁재형 PD가 바이크 마니아였어요. 힘든 촬영의 피로를 달랠 겸 저녁에 맥주라도 한 잔 할라치면 탁 PD가 어김없이 바이크 자랑을 늘어놓는 겁니다. 처음엔 '이 나이에 무슨 바이크냐'냐는 식으로 넘겼지요. 근데, 좋은 취재 거리가 있는데 그걸 취재할려면 반드시 바이크를 타야 한다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귀가 솔깃하데요.
-무슨 취재길래 바이크를 타야 한대요.
▶동남아에 밀림을 돌아다니는 방물장수들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바이크를 타고 다닌대요. 바이크 방물장수를 취재하려면 바이크를 타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이었죠. 그말을 듣는 순간 바로 결심이 섰죠. 돌아오자 마자 바이크 면허증 따고, 할리(바이크 일종)도 샀어요.
-바이크 배웠으니 동남아 바이크 방물장수 취재 갔겠네요?
▶아직 못 갔어요. 우선 바이크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을 하나 기획했지요. 그게 바로 채널T에서 방영된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입니다. 국내 곳곳을 여행하는 건데 4개월 동안 진행되었지요.
-결국 취미를 생활로 연결시켰네요.
▶그런 셈인가요? 바이크도 취미를 떠나 본질적으로 여행 수단의 하나죠.
-그동안 사진 취재나 방송 프로그램 촬용 차 80여 개국을 돌아다닌 '방랑의 사진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간단히 말하면 나의 삶이죠. 그런데 젊었을 때와 지금은 의미가 조금 달라졌어요. 여행은 일단 몸이 물리적(공간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행은 몸만 이동하는 게 아닙니다. 정신도 함께 이동하죠. 옛말에 '만 권의 책, 만 리 여행'이란 말이 있습니다. 만 리를 여행한다는 것은 만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고 동시에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 저는 여행은 곧 나를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때 여행은 방랑의 의미에 가깝죠. 알 수 없는 나를 찾아 헤매는 여행 곧 방랑인 셈이죠.
-지금은 여행이 자신을 찾는 행위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이제 여행은 나를 나인 채로 유지시켜주는 수단입니다. 지치고 힘들 때 기를 불어넣고, 자신감을 잃었을 때 자신감을 충전하는, 그래서 온전한 마음과 육체와 혼을 일체시키고 정렬하는 과정이 여행입니다.
-여행의 어떤 점에 끌렸습니까?
▶여행을 나서게 하는 원동력은 호기심입니다. 사람과 그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죠. 세계 어디, 어느 오지를 가도 사람이 살고 있어요.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들의 삶이 신기해서 카메라를 들어대고 또 지나면 또 어딘가를 찾고 싶죠.
-전시회 중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가 있었지요. 무척 역설적인데요.
▶잘 새겨보면 역설적이라기보다 일맥상통하는 얘기입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저 사람들은 '사물을 어떻게 인식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호기심과 비슷하죠. 같은 사물을 두고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릅니다. 인식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죠. 몽골 사막의 모래언덕(사구)은 보통 황량하게 보인다고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관능미가 느껴질 만큼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보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 실체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무엇이죠. 그래서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이죠.
-그렇다면 사진(寫眞)은 객관적인 실체에 대한 모사가 아닌 셈이 되네요.
▶당연합니다. 사진가 10명이 찍은 송정 바다 사진은 다 다를 겁니다.
-사진이란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우선 피사체에 대한 개념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찍는 사람이 '저걸 왜 찍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 답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다음은 어떻게 찍느냐죠. 따라서 사진은 사물이 모사된 종이 한 장만이 아니라 그것을 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과정 그 자체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진에는 작가가 찍은 이유와 그 과정이 담겨 있는 것이죠.
-본인에게 사진의 의미는 뭡니까.
▶일 중의 하나죠.
-신앙처럼 여기는 줄 알았는데, 좀 덤덤하네요.
▶한때는 그 비슷하게 생각한 적이 있긴 했어요. 사진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건 아니잖아요. 처음 취미로 한 것이고, 재미가 있으니까 계속하는 것이죠. 엄숙주의 별로 안 좋아해요.
-언뜻보면 세상과 시간을 즐기며 사는 것 같은데 어떤 때 벼락처럼 엄청난 결과물, 이를테면 사진집이나 책을 쏟아내 주변을 놀래키곤 했는데,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비결이라, 하 하 하. '에버리데이 해피(everyday happy)', 이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생활 철학인데 저 자신에게 거는 주문 같은 겁니다. 나는 매일 매일 행복하다, 행복해지도록 하자, 머 이런 거죠. 행복해지려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오지 여행 중이라도 신문사 칼럼 원고는 마감을 칼 같이 지킵니다. 펑크 낸적 한 번도 없어요. 마냥 놀아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못 놀면 일도 안돼요. 놀면서도 책 읽고 작업 구상하고 뭐 그렇게 살죠.
-작품 전시회와 책 발간 소식이 뜸했지요. 조만간 터트릴 뭔가 있을 것 같은데요.
▶하, 그참. 이번엔 바이크 타며 너무 많이 놀았나봐요. 당장 내놓을 건 없어요.
-요즘 어떤 작업 하는지나 들어봅시다.
▶지난 1년 동안 고리 원전을 찍고 있어요.
-원전이라, 어떤 사진인지 궁금합니다.
김 작가가 스마트폰을 꺼내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해변에 늘어선 한 집의 슬레이트 지붕 위에 고리원전의 돔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엔 반대합니다. 하지만 원전 자체에 대해선 다릅니다. 기장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원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죠. 원전은 부산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담론 거리죠. 저는 저 방식대로 원전이란 거대 담론에 참여하고 있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