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든일곱인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 안촌댁의 일생을 담담히 풀어낸 '안촌댁' 삽화.

- 안도현의 발견/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1만3500원

'감나무 밑둥치에 매미 허물 하나가 보인다. 매미가 벗어놓고 간 누더기다. 한 생명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 텅 비어 있다. 한낱 미물의 일 같지가 않다. 우리를 낳은 늙은 어머니의 자궁이 저러할 것이다.'('우화등선' 중) '어떤 지역의 지명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 지역으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통영에 가면 이순신 장군하고 마주 앉아 생선회에다 소주 한잔 할 수 있을 테고, 함양에 가면 따뜻한 햇볕을 품은 골짜기에다 집을 지을 수 있을 테고, 무주, 진안, 장수에 가면 무진장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만 같고, 여름에도 눈이 보고 싶다면 설악산을 떠올리면 된다.'('지명' 중)

	동심이 파괴된 동시들에 안타까움을 표현한 '동심론' 삽화. 한겨레출판 제공

이 얼마나 재치 있는 상상인가. 여름철 나무 밑둥치에서 종종 보게 되는 매미 허물. 톡 손대면 바스락하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흔적에서 저자는 자식에게 모든 걸 다 내 준 어미의 자궁을 떠올렸고, 지명의 한자 뜻과 역사적 사실 등을 바탕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를 펼쳐 보이면서 독자를 유쾌하게 만든다.

반가운 이름이 돌아왔다. 안도현 시인이 시 절필 선언 후 처음으로 산문집 안도현의 발견을 냈다. 시인의 눈길이 머문 달큼한 일상의 발견 201편을 담았다. 책은 시인의 문학과 삶,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 사람, 맛, 숨, 그리고 생활이라는 다섯 개의 부로 나눠 단순하지만 순수하게, 투박하지만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평소 저자는 "시인은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원래 있던 것 중에 남들이 미처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가 눈길을 준 대상들은 유독 작고,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이 많다. 곤달걀 속 껍질을 깨고 밖으로 걸어 나오지 못한 채 죽은 병아리가 그렇고, 주방용품 중 제일 비천하지만 '어떻게든 견디는 게 삶인' 냄비받침과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든 이웃들을 위해 늘 열려 있는 타인능해라는 이름의 운조루(전남 구례)의 큰 쌀통이 그렇다. 시인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산기슭에 홀로, 혹은 두세 포기 피어 흔들리는 구절초의 가는 허리를 오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사내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피식 미소짓게 하는 시인의 이 한 마디 말을 통해 우리는 작고 별 볼일 없는 것들이 산기슭에 홀로, 혹은 두세 포기 피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소한 것일수록 오래 응시하고, 어루만져보고, 귀 기울였을 때에야 비로소 볼 수 있는 발견의 미학이다.

시인이 쓴 201편의 글은 비록 짧지만 작고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차분하고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다.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더 시적인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