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가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하며 부산 해운대 일대와 센텀시티에는 영화의 장이 풍성하게 마련됐다. 특히 해운대 해수욕장에 설치된 '비프빌리지'의 야외무대는 많은 영화인이 방문해 팬들과 가깝게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곳으로 활용돼 가장 인기가 높았다. 수시로 진행된 스타들의 무대인사와 스타와 팬이 수다 떨듯 진행하는 '오픈토크'는 우연히 들른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을 묶었다.
◇'배우의 탄생' 박유천, "사랑한데이"
지난 3일 오후 4시 '오픈토크-더 보이는 인터뷰'의 문을 연 첫 주자는 박유천이었다. 인기그룹 JYJ의 멤버에서 연기자로 발을 넓히고 있는 박유천은 올여름 영화 '해무'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각인시켰다. 스스로 "연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박유천은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겸손하면서도 당차게 연기에 대한 열정과 생각을 드러냈다.
이날 행사는 '뜨거움' 그 자체였다. 준비된 좌석은 물론 무대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은 어디든 그를 보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무대 위에서 스태프가 옮기는 입간판에도 팬들은 열광했다. 밝은 모습으로 등장한 박유천은 "11년 활동 중 이렇게 대낮에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긴장되고 떨린다"고 말했다. "새벽까지 곽도원 선배와 술을 마시며 연기 이야기를 했다"는 그는 "문성근, 김윤석, 김상호, 유승목 등 대선배들이 따라주는 고량주를 마시며 많은 것을 배운다"며 "좋은 선배, 좋은 스태프와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연기가 좋았다는 사회자의 말에는 "연기를 4~5년 했지만, 여전히 배우라는 말은 어색하고 실감 나지 않는다. 그래서 칭찬을 들으면 낯간지럽다"고 대답했다. 이어 "박유천이 연기하는 것에 대해 대중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여겨져 서글플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가수 출신 연기자 중 라이벌로는 임시완을 언급하며 "영화 변호인을 보며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가수 출신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요즘 부쩍 멜로를 하고 싶어진다는 박유천은 함께 연기하고 싶은 여배우로 정유미를 꼽아 여성팬들의 서운함 섞인 탄식을 듣기도 했다.
배우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장점 세 가지를 꼽아달라는 팬의 질문에는 "목소리, 어깨, 속눈썹이다"고 대답하며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올려준 속눈썹에 감사한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팬들의 호응에 부산사투리로 "사랑한데이"라고 화답한 박유천은 "연말까지는 JYJ 활동을 할 예정이다.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데 내년 초에 무언가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배우 박유천을 향한 기대를 한층 높였다.
◇'이순신이 된 연기신' 최민식, "모든 것이 천행"
지난 4일 오후의 오픈토크 '이순신이 된 연기신, 최민식'에는 배우 최민식이 출연했다. 모래바람 때문에 눈을 뜨기조차 힘든 날씨였지만 진솔하고 겸손한 그의 대화에 관객들은 몰입했다.
먼저 18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최민식은 "'감히 충무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놓아버려야 하나'며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 꿈을 꿨다. 하늘을 뒤덮으며 날던 학이 갑자기 나를 향해 급강하해 내 목을 젓가락으로 집듯 낚아챘다. 새벽에 잠에서 깨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뜻이구나!' 생각했다"며 쉽지 않았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나는 연기를 하는 배우다.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정리와 판단을 통해 연기하면 그 캐릭터가 완성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완벽한 인물 충무공을 연기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컸다. 그래서 직접 보고 싶고, 말씀을 듣고 싶다는 바람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꿈에서 한 번만 만나뵙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며 촬영을 마친 명량은 그간의 모든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이순신 열풍'까지 만들어냈다.
최민식은 "모든 것이 천행이었다"며 '명량'에 보내준 관객의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 전했다.
"단순히 수치로만 보면 수도권 인구가 다 봤다는 얘기인데,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며 영화가 사랑받았던 이유에 대해 "우리 국민의 가슴 깊숙한 곳에 충무공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작업한 할리우드 진출작 '루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최민식은 "뤽 베송의 영화에 관한 향수가 있어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며 출연 동기를 밝히고, "대신 영화 촬영 전 한국인이나 동양인을 비하하거나 편협한 시각으로 묘사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며 촬영 비화를 전했다.
함께 출연한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에 대해서는 "처음 봤을 땐 너무나 평범한 그 나이 또래의 여성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눈빛이 달라진다"며 "그 정도로 유명한 여배우가 겸손해서 더 놀랐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뤽 베송 감독과는 영화적 동지가 됐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한 팬이 "영화에서도 나온 '천행'을 배우 생활 중에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자 최민식은 "'천행'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며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무사히 촬영을 마친 것도 천행, 영화가 잘 된 것도 천행이다. 촬영이 끝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란 말이 나왔다. 하루하루가 천행이다"고 대답했다.
최민식은 "연기는 이미 내 삶이 돼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대로 하고 싶다. 카메라 앞은 너무나도 외롭고 갈수록 깊어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때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1800만 명이라는 관객 수가 깨지기 힘든 기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반드시 좋은 영화가 나와 그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영화에 대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영상=김민훈 촬영기자 minhun@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