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는 전작 '에이리언'을 뛰어넘어 인류 창조와 신의 존재에 관한 사유를 영화 속에 불어넣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배급

리들리 스콧이 '프로메테우스'(2012)로 30년 만에 공상과학(SF) 장르로 복귀할 때 세간의 기대는 폭발적이었다. 단지 '에이리언'(1979)과 '블레이드 러너'(1982) 두 편의 영화만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현대 SF 영화의 미학적 스타일과 철학적 구도의 정립자였다. 게다가 한 세대가 지나도록 그를 뛰어넘는 장르의 혁신은 없었다. 이 분야의 '마스터' 리들리 스콧은 SF 영화로 돌아오기에 앞서 대단한 결심을 했을 것이다.

에이리언의 기원과 정체불명으로 남은 외계 우주선의 비밀을 다루면서 감독은 '에이리언' 시리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인류의 창조주 '엔지니어'(외계인)를 찾아 일군의 탐사대가 미지의 행성 Lv-223으로 향한다. 이 행성에 도착한 탐사대가 외계 생명체를 수색하다 위기에 처하고 단 한 명의 생존자만 탈출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의 서사를 고스란히 따른다. 그러나 우주적 공포(Cosmic Horror)를 표방하며 공포 영화의 정석에 충실했던 과거와 달리, 리들리 스콧은 신화적인 메타포와 상징을 활용해 '프로메테우스'를 작가주의 영화로 끌고 간다.

이미 '에이리언'에서 우주를 향한 막연한 동경과 환상을 숨 막히는 공포로 뒤집어엎었던 리들리 스콧은 종교의 의미와 신의 존재에 관한 전복적인 사유를 영화 속에 감추어 놓는다.

■'상징'인 종교, '실재'인 세계

'프로메테우스'에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신성 모독의 혐의가 다분하다. 탐사대 일행은 피라미드 내부에서 캡슐 무더기와 함께 에이리언 벽화를 발견하는데, 십자가에 결박된 듯 양각된 에이리언은 예수의 십자가 책형이라는 기독교적 도상에 대한 전복적인 패러디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할 자는 우리의 구세주(savior)여야 마땅하지만, 우리가 목격하는 건 결국 죽음의 화신 에이리언(alien)이 아니던가? 탐사대원 할로웨이는 외계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또 다른 대원 쇼와 정사를 치르고 괴물을 잉태하는데, 불임의 여성이 임신한다는 이 상황은 성령에 의해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의 '수태고지'를 비튼 설정이다.

탐사대는 엔지니어(외계인)를 만나지만, 정작 이들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며 인간을 구원하기는커녕 도리어 공격한다. 인간을 창조한 이들이면서도 엔지니어의 함선에는 지구의 생명을 멸종시킬 가공할 생물학적 병기까지 실려 있다. 웨이랜드가 엔지니어에게 자신의 생명 연장을 바랐던 것처럼 우리는 죽음과 신에 대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해에 머물러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선하고 영원불멸하며 완전한, 죽음과 삶을 관장하는 절대적 주재자로서의 신의 모습이 인간의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꼬집는다.

이 작품은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종교적 믿음'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먼저 안드로이드(탐사대원이자 로봇)인 데이빗이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쇼의 꿈을 엿보는 장면이 있다. 아프리카 부족민의 장례 행렬을 본 어린 쇼가 '죽은 자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그건 종교마다 달라. 천국이나 낙원, 뭐라 부르던 아름다운 곳이야." 이 대목에서 종교는 인간의 기대나 소망을 투영한 세계관일 뿐 실체는 그와는 다를 수 있다고, 세계는 전적으로 비인격적이며 우리의 의지나 이해와는 상관이 없다고 일갈하는 리들리 스콧의 무신론적 비전이 드러난다.

■신의 이해-인격신서 자연신으로

질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사상에서 '표현'을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신은 우주 만물을 통해 자신을 펼쳐내고(explication) 있으므로 만물은 그 안에 각자 신을 품고(implication) 있다. 그에 따르면 신이란 인간의 형상을 하고 따로 존재하는 단독자가 아니라 그 자신이 세계 전체와 우주 만물에 깃들여진 복합적 총체다. 생명의 원리, 그 자체로서의 신(神). '프로메테우스'가 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맞닿아 있다. 엔지니어의 육체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지구 생명의 씨앗이 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적인 통념에 근거한 인격신('하나님-아버지')에 대한 믿음 대신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일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인간에게 죽음은 심각한 문제이며 생명은 자신의 실존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욕망을 지닌다. 스피노자는 이런 생명 의지를 코나투스(conatus)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연의 관점에서 죽음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데이빗이 엔지니어들의 의도를 추측하며 "때로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 하는 법"이라고 한 대사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죽음을 통해 존재의 붕괴와 해체를 경험하지만, 신이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오래된 표현처럼) 우리의 죽음마저 새로운 태어남을 위한 재료로 바라볼 것이다. 원시지구에서 자신의 몸을 해체해 생명의 씨를 뿌린 엔지니어는 더 이상 살아있는 개별적 자아로서의 실존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해체된 그의 몸과 세포는 DNA 정보로 다른 원소와 결합하거나 흡수되어 무수한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그러므로 쇼가 엔지니어에게 '왜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느냐'며 항변하더라도 이는 죽음을 폭력적이고 우발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수준의 인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엔지니어, 혹은 신의 관점에서는 지구에 뿌리려는 검은 액체가 생명의 죽음이 아닌 새로운 생명의 태동을 촉진하는 매개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로메테우스'는 스파노자 철학의 신에 대한 관점을 끌어들여 절대적 생명으로서의 신의 관점과 죽음을 애써 피하려 하며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관점, 상반된 두 개의 벡터(vector)를 동시에 드러냄으로써 신과 자연, 우주에 대한 종교적인 상상을 완전히 박살 낸다.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신화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념은 철저히 인간중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간의 이해에 따라 선한 것과 악한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구분해왔다. 신에 대한 관념, 죽음에 대한 관념 역시 다분히 인간적인 이해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자연 현상에 있어서 이 같은 도덕적 분별은 아무 의미 없으며,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제약하는 편견과 선입견이 될 뿐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관객에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날 것의 진실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세계는 우리의 희망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불편한 진실을….


# 에이리언과 H.R. 기거

	리들리 스콧(왼쪽) 감독과 H.R.기거

'에이리언'의 괴물 제노모프 디자인은 그로테스크 환상 미학의 거장으로 인정받은 스위스 화가 H.R. 기거의 솜씨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의 감독을 맡으면서 1976년 출간한 기어의 화집 '네크로노미콘'을 보고 영화에 등장할 괴물의 디자인을 맡겼다. 기거는 괴생물체와 외계 우주선 내부 디자인 등 '에어리언' 미술 콘셉트 아티스트로 활약했다. 살바도르 달리와 인연으로 '듄'(1984)의 작업에도 참여하며 미술계와 영화계를 오가며 활약한 기거는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영화 디자인도 담당했다.

조재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