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촉석루에서 진주검무(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하강진 교수는 다산의 장인은 19세 젊은 사위에게 진주검무를 보여주며 충렬의 역사의식을 전하려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서출판 경진 제공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진주를 세 차례 찾았다.

첫 번째 인연은 장인 홍화보와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178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진주에 있던 장인을 부인과 함께 찾았다. 다산은 15세이던 1776년 2월 한 살 위인 풍산 홍씨(1761~1838)와 결혼했다. 19세 젊은 사위에게 장인은 촉석루에서 기녀들을 동석시킨 연회를 성대하게 벌인다. 그 속엔 임진왜란 때 목숨을 바친 충신·열사와 국론이 분열된 조정의 문제점 등 엄중한 역사의식을 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다산은 '보잘것없는 한 여자가 적장을 죽여 나라에 보답함으로써 곧 군신의 의리가 온 세상에 빛났다'고 당시 소회를 적었다.

다산의 두 번째 진주 방문은 30세 때인 1791년 2월 이뤄졌다. 당시 부친 정재원이 진주목사였다. 그런데 다산이 촉석루 유람을 즐길 때 16개월 된 셋째 아들(구장)이 병중에 애타게 아버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산은 귀경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아들을 잃는다. 다산은 사무치는 격정을 억누르며 20행 고시 '억여행'(憶汝行)을 짓는다.

다산의 1년 뒤 엄청난 변고를 겪는다. 1792년 4월 부친이 위독하다는 급보를 듣고 진주를 향해 밤낮으로 달려갔으나 임종하지 못했다. 진주 관사에서 상을 치르는 데 이것이 세 번째 진주와의 인연이다.

이처럼 진주는 다산에게 충렬에 관한 내면의식의 심화와 함께 자식의 요절, 부친의 죽음 등 아픈 가족사를 간직한 공간이다.

하강진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의 '진주성 촉석루의 숨은 내력'(도서출판 경진·사진)에 담긴 '진주를 다녀간 명사들의 발자취' 가운데 한 대목이다. 그 발자취는 퇴계와 면암으로 이어진다. 퇴계 이황은 정치 소신과 학문적 완성을 예비하던 32세 때인 1532년 3월 촉석루를 찾았으며, 면암 최익현은 1902년 진주 남행 당시 촉석루에서 순국한 '삼장사(三壯士·촉석루는 김천일 최경희 황진 및 여러 장사가 순절한 곳이다)의 정충대의'를 읊었다.

이 책은 진주와 촉석루의 변천을 바탕으로 촉석루 현판시와 촉석루 절벽에 새겨진 바위글씨(본지 지난 2월 14일 자 18면 보도), 논개와 창의지사, 진주를 다녀간 명사들의 자취를 되살린다. 현판시로는 면재 정을보, 교은 정이오, 학봉 김성일, 청천 신유한 등을 꼽을 수 있다.

하 교수는 10여 년 자료 수집에 공을 들이며 촉석루 관련 한시만 1000여 수를 모았다. 하 교수는 "옛 기억의 재현은 단절된 역사를 이어주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일구는 과정"이라고 말했다.